문화재위원회, 진정성과 안정성 고민하며 결론 못내
"탑에 모르타르 사용해 습기에 약해…탑비 상태도 고려해야"
법천사 원위치냐 전시관이냐…귀향 지광국사탑 행방은
남한강 인근 원주 법천사(法泉寺)는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에 여러 고승이 머문 중요한 사찰이다.

조선시대 문신 허균은 1609년 법천사를 방문했는데, 당시에 이미 폐허였다고 기록했다.

경복궁처럼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절터에는 민가들이 형성됐다.

법천사지 위세를 상징하는 유물은 국보 제59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다.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984∼1070)이 입적하자 승탑과 함께 세웠다.

거북 받침과 몸돌 위에 올린 지붕돌인 이수, 몸돌 측면에 새긴 조각을 보면 정교하고 화려하다는 사실이 절로 느껴진다.

비석에 새긴 글씨도 매우 수려하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108년간 홀로 자리를 지킨 지광국사탑비가 드디어 동반자를 만나게 됐다.

그해부터 각지를 떠돈 국보 제101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향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법천사 원위치냐 전시관이냐…귀향 지광국사탑 행방은
지난 23일 찾은 법천사지는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종수 원주역사박물관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법천사가 탑이 두 개인 쌍탑가람이고, 금당(金堂) 규모가 경주 불국사와 비슷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아직 발굴하지 않은 지역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문객이 과거 법천사 모습을 유추할 건물은 전혀 없었다.

나이가 수백 년으로 짐작되는 느티나무만 이곳이 오랫동안 중요시된 공간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지광국사탑비는 법천사지에서 가장 안쪽 높은 지점에 있다.

멀리서도 우뚝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탑비 높이는 4.55m로 성인 키보다 훨씬 크다.

바로 옆에 지광국사탑 자리가 사각형 틀로 구획돼 있었다.

탑 자리는 학계에서 한때 논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가 남긴 도면 등으로 미뤄 탑비 바로 옆이 맞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지광국사탑은 본래 자리에 돌아간다는 불교 용어 '환지본처'(還至本處)를 앞뒀지만, 문화재청과 원주시는 또 다른 난제에 부딪혔다.

탑을 원위치에 둘지, 아니면 전시관을 따로 지어 보관할지가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21일 고려 승탑 중 백미로 꼽히는 지광국사탑 원주 이전을 결정했지만, 탑을 어떻게 보존할지는 추가 검토와 전문가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앞에 있던 지광국사탑은 2016년 3월 해체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 중인데, 2021년께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천사 원위치냐 전시관이냐…귀향 지광국사탑 행방은
전시관이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는 지광국사탑 부재가 워낙 약하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광열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사무관은 "문화재연구소가 한국전쟁 이후 1957년 탑을 보수할 때 사용한 모르타르로 인해 석재가 손상했다고 지적했다"며 "비는 물론 안개 같은 습기에도 취약하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부에 둔다면 지붕을 씌우는 정도로는 유지가 어렵고, 천장과 사방이 막힌 보호각을 세워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설명했다.

만일 지광국사탑과 탑비 자리에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유사한 덧집을 짓는다면 경관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관람객이 절터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감상하기 어려워진다.

아울러 탑과 함께 두어야 할 탑비 상태도 고려 대상이다.

탑비는 몸돌이 기울어졌고, 재질이 단단한 화강암이 아닌 다소 무른 점판암이다.

연구소에서는 탑비도 보존처리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천사 원위치냐 전시관이냐…귀향 지광국사탑 행방은
따라서 연구소 의견을 반영한다면 탑을 전시관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합리적이지만, 문제는 진정성이다.

유물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지광국사탑과 탑비 주변에 건물터가 있다는 점이다.

건물터 유적 3개가 탑과 탑비를 감싸고, 지대가 조금 낮은 인접지에도 건물터가 있다.

이처럼 큰 승탑원(僧塔院)터는 거의 없다고 박 관장은 강조했다.

박 관장은 "탑과 탑비를 세운 사례는 많지만,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같이 주변에 여러 건물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여러모로 상당히 공들여 조성한 유물"이라고 말했다.

법천사지 전시관은 석탑에서 약 390m 떨어진 지점에 들어설 예정이다.

원주시는 지광국사탑과 탑비가 전시관에 들어오는 것을 고려해 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착공은 내년 3월, 준공은 2021년으로 예상된다.

문화재청은 지광국사탑 위치 결정에 앞서 원주시와 함께 용역 연구를 시행할 계획이다.

탑을 원위치에 두면 발생하는 문제점을 분석해 결론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용역 결과는 11월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광국사탑 위치에 관한 안건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은 용역 결과를 받은 뒤에 가능할 것"이라며 "다양한 방안을 두루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천사 원위치냐 전시관이냐…귀향 지광국사탑 행방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