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6·25때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을 매듭짓는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당시 협정 서명자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 그리고 펑더화이(彭德懷)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었다.

펑더화이는 1898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났다. 1928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항일전쟁 당시 주더(朱德) 총사령관 밑에서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다. 마오쩌둥을 따라 중국 홍군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서며 많은 공을 세웠다.

펑더화이는 1950년 인민지원군 사령관으로 연인원 120만 명의 중국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밀고 내려왔다. 6·25전쟁 2년 반 동안 밀고 밀리는 싸움이 이어지면서 전사·실종·사망자 수만 400만 명이 발생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한반도 분단과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낳은 장본인이 됐다. 펑더화이는 그러나 게릴라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등 군사적 측면에서는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펑더화이는 1950년대 후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오쩌둥에게 직언을 하다 모든 직위에서 밀려났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는 등 고초를 겪다 197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