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서양 음악 난제 '피타고라스 콤마'를 풀다
“수학적 두뇌 없이는 음악을 할 수 없다.” 김상일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쓴 《악학궤범 신연구》를 읽으면 와닿을 말이다. 책을 펼치면 온갖 수학 기호가 눈에 들어온다.

《악학궤범》은 1493년(성종 24년)에 왕명으로 성현 유자광 신말평 박곤 등이 편찬한 음악 이론서다. 저자에 따르면 9권 3책으로 이뤄진 《악학궤범》은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1990년대 후반 한태동 연세대 명예교수의 ‘악학궤범 연구’를 시작으로 소수 연구자들이 연구의 명맥을 이어왔다.

저자는 한 교수가 현대수학의 자연로그함수(e)를 12악률에 적용해 동서양 음악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피타고라스 콤마’의 정체를 밝혔다고 전한다. 도와 솔 사이의 완전5도 음을 거듭해서 구해도 옥타브에 근접한 음과 실제 옥타브 음 사이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이를 피타고라스 콤마라고 한다. 저자는 이를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회전하고 나면 남아도는 윤일(閏日)’에 비유해 설명한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타고라스는 이른바 순정률을, 바흐는 평균율을 제시했다. 피타고라스 콤마를 다루는 동양적 악률법은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이다. 중국 송나라 음악이론가 채원정이 지은 악서로, 《악학궤범》의 기반이 된 《율려신서(律呂新書)》에 나온다.

저자는 피타고라스 콤마라는 초과분이 음을 작률하는 과정에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살펴보고 수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논리학으로 악학궤범을 풀어낸다. 부록을 통해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도 피타고라스 콤마 같은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수학이나 논리학을 통해 음악에 접근하게 되면 음악이 성립하는 근원적 문제에 도달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 있어서 음악만큼 동서양이 서로 일란성 쌍둥이 같은 분야도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동서양에서 모두 피타고라스 콤마 같은 음의 초과분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상일, 솔과학, 463쪽, 3만8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