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18세기 프랑스 혁명가, 장 폴 마라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인 장 폴 마라는 1743년 스위스 뇌샤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다. 보르도에서 의학을 배운 뒤 런던과 파리에서 내과의사로 활동했다. 1774년 절대주의 정치구조를 비판하는 《노예제도의 사슬》을 저술하기도 했다. 마라는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인민의 벗’이라는 신문을 창간하고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급진혁명을 주장한 자코뱅당원이던 마라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등과 함께 혁명을 주도했다. 귀족, 왕당파 등 절대주의 권력을 비판하고 민중의 정치 참여를 고취했다.

한창 혁명을 이끌던 마라는 1793년 7월 13일, 파리 한복판 자택의 욕조에서 피살됐다. 그를 암살한 자는 스물다섯의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였다. 온건주의를 표방한 지롱드파 지지자이던 코르데는 거짓 편지를 들고 마라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몰래 숨겨 놓은 칼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마라를 찔렀다. 이후 코르데는 “나는 10만 명의 프랑스인을 살리려고 마라를 살해했다”고 고백했다.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이란 제목의 작품에서 욕조에서 칼에 찔린 마라의 모습을 그렸다. 마라와 가까운 사이였던 다비드가 혁명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고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