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꿈꾸던 경영정보 전문가
기업·대학 거치며 실무·이론 갖춰
30년 만에 생산성본부 '재입사'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의 취미이자 특기는 판소리다. 흥부가의 돈타령, 춘향가의 사랑가 등 7~8개 레퍼토리를 자리에 따라 자유자재로 뽑아낸다. 그의 판소리는 특히 외국인 손님들을 만날 때 빛을 발한다. “한식 레스토랑에 초대해 한국의 맛을 보여준 다음 판소리까지 들려주면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럼 비즈니스는 일사천리죠.”

노 회장이 이번 ‘한경과 맛있는 만남’을 위해 선택한 식당도 퓨전 한식으로 이름난 ‘콩두’였다. 보리굴비, 간장게장 등 전통 한식 요리를 샐러드, 호박 수프 등 서양 음식과 곁들여 내놓는 곳이다. 노 회장은 “음식도 깔끔한 데다 외부는 한옥이면서 내부는 서양식인 독특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중요한 손님들을 종종 모시고 온다”고 소개했다.

아버지의 빈 자리 메워준 신부님

콩두의 메뉴는 모두 코스로 구성돼 있다. 노 회장은 보리굴비 정식을 골랐다. 메인 요리는 보리굴비 외에도 간장게장, 김치찜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신선한 채소 샐러드와 견과류를 얹은 청둥호박(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단호박) 타락수프가 모든 코스에 첫 번째 음식으로 나온다. 타락은 우유를 뜻하는 옛말이다. 돌궐족 말로 말린 우유를 뜻하는 ‘토라크’에서 비롯됐다.

노 회장은 1957년 전북 남원에서 2남2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듯 노 회장 집안 형편도 넉넉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초·중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운동도 만능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핸드볼, 중학교 때는 축구 대표로 뛰었다. 축구부가 유명한 전주공고로 진학해 축구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도 꿨다.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가족에 큰 시련이 닥쳤다. 지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웃집 농사와 바느질로 가계를 돕던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노 회장도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전주상고에 진학했다. “은행에 갔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바람을 따랐다.

자칫 방황의 길로 빠질 수 있었던 그를 붙잡아준 이는 천주교 남원성당의 베드로 김병엽 신부였다. 김 신부는 성당 앞을 지나가는 걸인에게 시계와 외투를 벗어줬고, 오토바이 사고로 선종할 때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용기를 주셨죠. 신부님께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배웠습니다. 여전히 그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교 졸업 후 바라던 은행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신증권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동 오일머니 덕에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던 시기였다.

“몇 년 일하다 보니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컸어요. 사회적 지위도 아쉬웠습니다. 남들보다 4년 늦게 한국외국어대에 진학했습니다. 집안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실무 경험 쌓아 교수로

[한경과 맛있는 만남]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中企 애로 듣고 해법 함께 찾을 것"

메인 요리가 나왔다. 노 회장 앞에는 보성 녹차물을 곁들인 보리굴비가 놓였다.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말린 굴비를 항아리에 보리와 함께 넣어 숙성시켰다고 한다. 두툼한 굴비에 먹기 좋게 칼집을 냈다. 노 회장은 녹차물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기자가 고른 간장게장도 만족스러웠다. 다리까지 발라낸 꽃게 살을 몸통에 담아 내줘 젓가락만으로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간장은 너무 짜거나 달지 않아 게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에 가긴 했지만, 막상 대학에 가니 학생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신부님께 배운 사명감이 발동한 것일까요.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명수배까지는 아니었지만 학생회 간부였기 때문에 붙잡히면 삼청교육대에 갈 판이었습니다. 제주도까지 도망을 가기도 했죠.”

노 회장은 그런 와중에도 공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다보니 주변에서 별로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웃었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자연스레 교수를 꿈꾸게 됐다. 후학을 가르치는 일이 사명으로 다가왔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

“한국외대가 경영정보대학원을 처음 설립했습니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교수를 하던 장유상 박사가 초대 원장을 맡았죠. 장 원장이 보스턴대 커리큘럼을 그대로 들여왔습니다. 정보라는 말은 정부에서나 쓰던 시절이라 생소한 분야였지만 지도교수가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개원 첫 신입생으로 들어갔죠. 대학원에 가보니 동기들이 학생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학생회장이 됐습니다. 공부에 학생회 일까지 하면서 스스로 무엇인가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담배를 끊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생산성본부에 입사했다. 1980년대 생산성본부는 컨설팅 부문에서 국내 최고로 꼽히던 기관이었다. 마침 경영정보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단 두 명 뽑는 자리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2년 후 한국신용평가로 이직했다.

“기업에 경영정보 관련 자문을 제공하려면 현장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영정보의 기본은 정보의 전산화인데, 제 ‘내공’이 부족했습니다. 마침 한신평에서 데이터베이스(DB)를 다룰 경력자를 찾더군요.”

한신평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다시 교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1993년 한국외대 경영정보대학원으로 돌아갔다. 경영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7년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생산성본부와 한신평에서 쌓은 실무 경험은 두고두고 도움이 됐습니다. DB 구축 같은 경영정보 관련 업무뿐 아니라 조직관리와 재무분석 등 기업 경영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요. 현장 경력을 인정받아 전임강사를 건너뛰고 바로 조교수로 시작했습니다. 선문대 경영학과는 제 제안에 따라 최근 경영정보시스템(MIS) 관련 과목의 커리큘럼을 빅데이터 위주로 바꿨습니다.”

30년 만에 돌아온 생산성본부

노 회장은 2003년 노무현 정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위원회에서 정보기술(IT)산업과 벤처 육성 정책을 담당했다. 현재는 중소벤처기업혁신성장위원회 위원장과 혁신성장추진협의회 수석공동대표 등을 맡는 등 민관 합동 정책기구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국가 정책 입안에 참여해보니 이게 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제 사명감과 통하는 겁니다. 대학에선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건 많지 않죠. 기업에선 현장에 영향은 줄 수 있지만 아무래도 기업이라는 틀에 갇히기 마련이고요. 정책 제안을 많이 한다는 측면에선 ‘폴리페서’가 맞습니다. 하하.”

후식으로 복분자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과즙을 많이 넣고 우유를 줄인 덕분에 상큼했다. 음료는 커피, 오미자차, 매실차, 꿀대추차 등 선택지가 다양했다.

노 회장은 지난해 2월 생산성본부 회장에 선임됐다. 30여 년 만의 ‘재입사’였다. 노 회장은 생산성본부 재도약을 위한 3대 과제로 ‘공적 기능 강화’ ‘미래 대비 투자’ ‘해외 컨설팅 시장 개척’을 제시했다.

“생산성본부는 산업발전법에 근거를 둔 특별법인입니다. 공익적 역할에 충실해야죠. 취임 후 지역 중소기업을 지속적으로 찾아 애로점을 듣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영향은 어떤지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끌어올려 제도에 적응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죠. 정부에 기업의 애로점을 전달하는 기능도 확대하고 있고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디지털 기반 업무 혁신도 추진 중입니다.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유럽 등지로 컨설팅과 교육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노 회장은 대학 초청 강연도 한 달에 두세 번 나가고 있다. 그는 청년들에게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라”고 당부한다. 기성세대의 성공 방식을 따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는 주문이다.

“‘생산성’으로 지은 삼행시로 강연을 시작하면 집중도가 확 올라갑니다. 생기발랄한 여러분! 산전수전 다 겪은 제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성공하지 마세요, 꼰대들이 만든 방식으로.”

■ 컨설팅 노하우 수출 집중…세계에 韓 발전 모델 전수

한국생산성본부는 노규성 회장 취임 이후 컨설팅과 교육 노하우 수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생산성본부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의회 산하 기관인 재정정책연구소와 4차 산업혁명 기술 중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에듀테크(교육+기술) 포럼’을 열었다. 생산성본부는 지난해 11월 이후 인도, 베트남 등에서 에듀테크 포럼을 개최했다.

생산성본부는 또 지난 5월 칠레 생산진흥청과 창업 지원 등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노 회장은 콜롬비아 부통령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산성본부는 루마니아에 생산성본부 설립과 관련한 전반적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쿠레슈티 경제대학교에 생산성연구센터를 열기도 했다.

■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1957년 전북 남원 출생
△1984년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한국외대 경영정보학 석사
△1986~1987년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
△1987~1993년 한국신용평가 팀장
△1995년 한국외대 경영정보학 박사
△1997년~ 선문대 경영학부 교수
△2003년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자문위원
△2003년~ 한국디지털정책학회 회장
△2017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
△2018년~ 혁신성장협의회 수석대표
△2018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한경과 맛있는 만남]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中企 애로 듣고 해법 함께 찾을 것"

노규성 회장의 단골집 콩두

발효 음식 주 메뉴…점심 보리굴비 일품

콩두는 서울 정동 덕수궁길에 자리잡은 모던 한식 레스토랑이다. 식당 이름이 ‘콩 두(豆)’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식의 기초인 장(醬)을 기반으로 한 발효 음식이 주요 메뉴다. 한윤주 대표가 2002년 삼청동에 세운 뒤 2013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한 대표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국빈 만찬을 준비하기도 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中企 애로 듣고 해법 함께 찾을 것"

낡은 한옥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 특유의 여백을 살린 로비를 만날 수 있다. 1층과 2층으로 돼 있는 식사 공간은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외국인 손님을 위해 포크와 나이프도 기본 제공한다. 신안 천일염, 보령의 유기농 쌀, 영광 법성포에서 말린 보리굴비, 서산 암꽃게로 만든 간장게장 등 엄선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식사는 초록빛-햇빛-물빛의 3단계 코스로 구성돼 있다. 점심에는 보리굴비, 간장게장, 두부 스테이크, 김치찜 등에서 메인 요리를 고르면 된다. 저녁에는 소 등심과 대구구이 등이 추가된다.

후식으로 나오는 복분자 아이스크림과 다양한 전통차 덕분에 식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점심은 3만9800~6만3800원, 저녁은 5만9800~11만9800원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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