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서 흘러넘친 이야기로 고립과 소외감 풀어냈죠"
“현대인들은 바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형태로 고립되기 쉽잖아요.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흔히 소통 실패가 발생하고요. 그런 모습들을 술이란 소재를 통해 풀어내면서 삶의 ‘여유’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소설가 은모든(사진)이 ‘2018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인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에 이어 두 번째로 술을 테마로 한 작품집을 출간했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다섯 편의 에세이, ‘테이스트 노트’를 묶은 《마냥, 슬슬》(숨쉬는책공장)이다. 지난 9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회사 생활이 힘들어 마치 죽을 것 같다가도 퇴근 후 친한 이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여유를 찾고 싶어 하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각 단편은 20대와 30대, 40대 여성들이 각각 등장해 술을 마시면서 시작한다. 20대는 연인과의 이별을 예감하고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와인을 병째로 들고 마신다. 30대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 남동생의 속사정을 듣기 위해 함께 맥주를 마신다. 40대는 남편과 아들, 부모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밤마다 위스키 잔을 쥔다.

“술잔에서 흘러 넘친 이야기를 통해 여린 존재들이 직면한 고립과 소외감을 응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들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탐색했습니다. 술은 고립과 각박함에서 벗어나 편한 사람끼리 웃고 떠들며 잠시 한숨 돌리게 만드는 사적 관계의 매개체가 되죠.”

"술잔서 흘러넘친 이야기로 고립과 소외감 풀어냈죠"
각 소설은 단편이지만 서로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된다. 남자 조카와 음식으로 소통하려는 호선의 이야기인 ‘누구나 곧바로 응용할 수 있는 5분 레시피’에 잠시 등장한 누나 호정은 ‘부활의 맛’의 걱정 많은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덕의 추천’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새 삶을 찾고 싶어 하는 민주는 호선의 여자친구였다. 작가는 “고립된 상황을 한 개인이 다 책임지고 풀 수 없기에 인간관계의 작은 선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테이스팅 노트’에는 작가가 일본 워킹홀리데이 시절 일과 후 즐겼던 흑맥주 ‘기네스’부터 가족여행의 끝을 멋지게 장식해준 ‘불바디에’, 간소하지만 호사스럽게 계절의 맛을 즐기는 ‘한산소곡주’까지 그가 일상에서 찾았던 여러 술의 감촉을 경쾌하게 담았다. 책 제목은 한산소곡주를 마시며 그가 받았던 느낌인 ‘마냥 마시니 슬슬 취한다’에서 따왔다. “책이 독자들에게 힐링이 되면 좋겠어요. 휴가 때 한 손에는 술 한잔을, 다른 손에는 이 책을 들고 읽을 수 있는 동반자 같은 소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