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중견·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관행처럼 이어져온 ‘출판사 전담작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한 출판사와 독점 계약을 하기보다 여러 출판사와 수시로 계약을 맺는 작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유력 출판사가 유명 작가를 독점하는 시대가 끝나고, 너나없이 재능 있고 인기 높은 작가를 잡기 위한 출판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판계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막 내린 '출판사 전담작가'…인기 작가 유치 경쟁 치열
출판계의 이런 경향은 최근 소설가 이문열이 40년 넘게 함께한 민음사와 결별하고 새 파트너를 찾으면서 더 분명해졌다. 이 작가가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과의 인연으로 오랜 기간 민음사에서만 책을 내오면서 형성된 ‘이문열=민음사’라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조정래(해냄), 김훈(문학동네), 공지영(해냄), 김영하(문학동네), 정유정(은행나무) 등 원로·중견 작가들은 여전히 작품을 특정 출판사에서 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작가가 출판사의 마케팅·기획 능력을 믿고 안정적으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다. 출판사로서도 이른바 ‘잘 팔리는 좋은 작가’를 사실상 독점하면서 작가를 출판사 브랜드로 삼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상당수 작가는 4~5년 전부터 여러 출판사를 통해 작품을 내고 있다. 장강명 작가가 대표적이다. 장 작가는 최근 공상과학(SF)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중소 출판사 아작에서 출간했다. 이전 작품들도 아시아, 민음사, 에픽로그, 예담, 은행나무, 한겨레출판 등에서 출간했다. 장 작가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관련 출판사와 한 번 더 계약한 특수성 때문이었지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좋게 봐주는 출판사는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내 작품의 장점을 잘 이해해주는 출판사와 손잡게 된다”고 설명했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의 작가 조남주는 지난해 소설집 《그녀이름은》과 장편 《가출》을 각각 다산책방과 아시아에서 냈고 신작 장편 《사하맨션》은 민음사에서 지난 5월 출간했다. 2010년 민음사를 통해 첫 장편 《백의 그림자》를 낸 소설가 황정은도 2016년 《아무도 아닌》은 문학동네, 올해 초엔 《디디의 우산》을 창비에서 출간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요즘 작가들은 출판사와의 개인적 의리보다는 마케팅 등 실리적인 문제, 출판사의 작품 이해 능력 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 문학을 다루는 출판사가 많아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단편소설 ‘테이크아웃’ 시리즈를 내는 미메시스를 비롯해 북21이 문학 브랜드 ‘아르테’, 문학동네가 계열사로 문학전문 출판사 ‘난다’를 만들면서 실력 있는 젊은 소설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수혜자로 ‘2018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한 은모든 작가가 꼽힌다. 그는 지난해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을 비롯해 ‘테이크아웃’ 시리즈인 《꿈은, 미니멀리즘》(미메시스), 중편소설 《안락》(아르테)을 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인 작가가 한 해에 소설 세 종을 펴낸 것은 출판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지난해 장편소설 《콜센터》를 낸 김의경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기 이름을 빨리, 그리고 자주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젊은 작가들로서는 대형 출판사에 차기 작품을 투고한 뒤 오랫동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는 일”이라며 “자기 작품을 알아봐주는 크고 작은 출판사가 많아지는 것은 출간을 원하는 작가들에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