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가 크루거 한글작품 공개 눈길
현대 개념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바바라 크루거(74)의 개인전이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7일 막을 올린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크루거의 개인전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신축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이번 전시에선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크루거가 제작한 주요 대형 설치 작품과 콜라주 작품, 영상 등 44점을 선보인다.

194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크루거는 사진 이미지와 글자를 결합한 작품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눈길을 사로잡는 상징적인 서체로 그림 또는 사진 속에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넣어 포스터와 잡지나 신문 표지를 연상케 한다. 대중매체 속 권력과 물질에 대한 욕망, 소비주의, 성별과 계급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담은 작품이 많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한글 설치 작품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사진)’(2019)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 6.0m, 폭 21.7m인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크루거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영문 글귀인 ‘플렌티 슈드 비 이너프(Plenty should be enough)’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소비 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언사”라며 “거대한 수직 텍스트가 압도적 조형미를 준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실 내부를 흑백 텍스트로 꽉 채운 ‘무제(Forever)’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2017년 작품을 작가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재디자인했다. 조지 오웰 소설 《1984》에 나오는 문구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를 비롯해 버지니아 울프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글귀 등 영문 텍스트로 가득 차 있다.

전시장 아카이브룸에서는 작가 육성이 담긴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