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수상, 전혀 예상 못했죠"…한국인 최초 '그리핀 시 문학상' 받은 김혜순 시인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한 최돈미 시인도 ‘우린 동양인 여자라서 절대 못 받는다’고 했죠. 시상식장에도 아시아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불려 정말 현실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그리핀 시 문학상’(국제부문)을 받은 김혜순 시인(64·사진)이 25일 열린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시인은 아시아 여성 시인 최초로 그리핀 시 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한강 작가가 수상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이 영어 번역 소설에 주어지는 상이라면, 그리핀 시 문학상은 영어로 번역된 시집에 주어지는 상이다. 문학계에선 ‘시인들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시인은 지난 7일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을 번역한 최 시인과 이 상을 공동 수상했다.

수상 시집은 2015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고통을 주는 ‘삼차신경통’이라는 병을 앓았던 시인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겪은 이중의 고통 속에서 써 내려간 시 49편을 묶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에 대해 썼다. 김 시인은 “죽은 자들의 죽음을 쓴 것이라기보다 산 자로서 죽음을 쓴 자서전”이라며 “산 자로서 죽음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나 저와 제 주변인들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들을 산 자의 죽음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과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의 감수성에 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현존하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인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돼 소개됐다. 이번에 수상한 《죽음의 자서전》 영문판은 올해 미국 최우수번역도서상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이런 이유로 문학계에선 아시아권 시인으로는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시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제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런 말은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작품 그만 쓰라는 얘기와 같다”며 “매번 언급되는 우리나라 작가라면 누구나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