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사시에 걸맞은 압도적 스케일의 무대가 펼쳐졌다.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장대한 영웅신화를 무대로 구현하는 정석을 보여준다. EMK뮤지컬컴퍼니가 ‘마타하리’ ‘웃는 남자’에 이어 선보인 대형 창작뮤지컬로 영국 아더왕 신화를 담고 있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자라온 아더가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고 왕이 되고, 이후 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진정한 왕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8월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엑스칼리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오는 8월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엑스칼리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아더(김준수 분)가 살던 작은 마을부터 거대한 왕실, 색슨족이 머무는 장소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가득 채우는 대형 세트가 화려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엑스칼리버를 뽑는 공간이자 마지막에 아더왕이 고독하게 오르는 커다란 바위가 인상적이다. 아더왕이 바위에 올라 엑스칼리버를 들어올릴 때마다 전설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70여 명이 펼치는 대규모 전투신은 비 내리는 효과가 더해져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더가 왕이 되는 과정을 담은 1막에선 긴장감과 유쾌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아더가 엑스칼리버를 뽑는 장면이 지난 3~6월 공연된 뮤지컬 ‘킹아더’에선 처음부터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선 1막 중간쯤 나온다. 이 덕분에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극적 긴장감이 길게 유지됐다. 아더가 기네비어(김소향 분)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무거운 서사의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이끌었다. 기네비어의 캐릭터에 변화를 준 각색도 한몫했다. 전설 속에 수동적으로 나오는 공주가 이번 무대에선 무예가 뛰어나며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왕이 된 후 성장 과정을 그리는 2막의 스토리 전개에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듯하다. 아더왕이 주체할 수 없이 분노하는 장면, 기네비어와 랜슬럿(엄기준 분)의 사랑이 더해지며 아더왕과 삼각관계로 흘러가는 설정이 갑작스럽다. 아더왕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는 관객들은 당황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극 초반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 아더왕의 성격을 복선으로 깔아놓긴 했지만 개연성이 부족해 캐릭터가 급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보다 정교한 감정 표현이 아쉬웠다.

‘마타하리’ ‘웃는 남자’의 음악을 맡은 프랭크 와일드혼은 이번에도 서정적인 멜로디에 고음을 강조한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를 대거 배치했다. 아더왕과 이복누이인 모르가나(장은아 분)가 부르는 곡은 대부분 폭발적인 고음을 내질러야 한다. 두 배우는 풍부한 성량으로 이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하지만 엇비슷한 강도와 톤의 노래들이 지나치게 많아 후반부에선 피로감마저 느껴졌다.

주연 배우들은 세 시간에 이르는 대작을 힘 있게 이끌어 갔다. 김준수는 젊은 영웅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선보였다. 장은아의 에너지와 김소향의 톡톡 튀는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엄기준과 멀린 역을 맡은 손준호도 베테랑답게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갔다. 공연은 8월 4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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