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가운데)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가운데)가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바로크 바이올린의 여왕’은 한국 팬들의 오랜 기다림에 깊은 울림으로 답했다. 지난 12일 저녁 LG아트센터에서 1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 레이첼 포저(51)는 연주하는 두 시간 내내 지친 기색 없이 객석을 사로잡았다. 눈빛과 고갯짓으로 계몽시대 오케스트라(OAE: 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를 지휘하고 소통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원전악기(곡이 작곡된 시기에 사용하던 악기) 악단의 객원 리더로 15년 이상 활약해온 세월이 만들어낸 호흡이었다.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전반부의 바로크 음악들은 왠지 모를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코렐리의 합주협주곡 c단조로 막을 올린 공연은 만프레디니, 제미니아니의 곡으로 이어지며 바로크 음악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했다. 1부를 마무리한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은 현악기들과의 어울림은 매력적이었지만 강약 조절이 어려운 하프시코드의 소리가 묻히는 듯해 아쉬움을 남겼다.

2부엔 1부의 검은 드레스 대신 반짝이는 흰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무대의 분위기를 바꿨다.

1부와 달리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들의 귀에도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 연주는 오히려 신선했다.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할 때 기초로 삼은 14행의 정형시 형식인 소네트를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가 계절별로 낭독한 후 연주하는 독특한 형식이 눈길을 끌었다.

따뜻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음색으로 기대했던 ‘봄’과 ‘가을’보다 더 좋았던 것은 ‘여름’이었다. 뻐꾸기가 울고 산들바람이 불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번개와 천둥소리가 휘몰아치는 여름은 13인조 오케스트라의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요란한 폭풍이었다. 여유 있는 템포 속에서도 생기가 넘치는 사계절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포저는 ‘사계’가 끝난 뒤 박수를 멈추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라 스트라바간차’ 12번의 2악장 ‘라르고'를 앙코르곡으로 선사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한 곡”이라고 직접 소개했다. 포저가 연주한 ‘사계’의 여운이 짙다면 그가 브레콘 바로크와 녹음해 2017년 발매한 음반 ‘사계’를 찾아 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