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초콜릿바…인플레이션의 신호였다
포장은 같은데 전보다 양이 줄어든 포테이토칩, 상자는 커졌는데 중량은 감소한 시리얼. 제조사의 눈속임에 소비자는 분노한다. 하지만 ‘신호(signal)’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단순히 꼼수라고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을 생활비 전반의 상승 가능성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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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이자 정책전문가 피파 맘그렌은 저서 《시그널》에서 2016년 말 삼각형 모양의 초콜릿바로 유명한 토블론이 원가 절감을 위해 삼각형 사이를 넓히기로 결정했던 때를 예로 든다. 초콜릿이나 립스틱 같은 일상용품의 가격 상승에서 인플레이션을 읽고 경제 전반의 분위기를 파악하면 다음에 올 더 큰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저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뱅커스트러스트, UBS 등 금융회사에서 전략을 담당했고 드론(무인항공기)회사와 컨설팅회사를 창업해 경영자로도 활동했다. 자비로 낸 이 책은 아마존 경제 분야 1위에 올라 화제가 되면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경제 이론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다양한 사례를 접목했다. 거시경제를 다루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일화를 곁들여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2007년 5월 살던 집을 팔고 저렴한 임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다가올 금융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변에도 권했지만 한 친구는 “6개월 안에 50만달러가 더 오를 것”이라는 은행원과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을 더 믿었다. 저자는 2006년 뉴욕 블루밍데일스백화점 꼭대기 층에 쌓인 화려한 무늬의 핼러윈 접시세트에서 오늘의 소득을 내일을 위해 저축하는 게 아니라 내일의 소득을 오늘 앞당겨 쓰는 사람들의 소비 중독을 읽었다. 2009년 6월 전라의 모델이 등장한 패션잡지 ‘보그’ 영국판 표지에서는 빚이 쌓여가는 젊은 층이 아니라 돈 있는 엄마들로 고객층이 변하고 있음을 포착했다.

저자는 ‘신호’를 토스트 냄새에 비유한다. 타는 냄새가 나면 얼른 불을 꺼야 한다. 신호에 빨리 대응하지 못하면 양식이 될 토스트는 재가 되고 만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는 돈의 가격이다. 선진국들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의 가격 즉, 금리를 억눌렀다. 저금리 신호는 부동산이나 식품 같은 실물자산의 가격을 올렸고 세계 주식시장의 가격도 끌어올렸다. 이처럼 경제는 우리의 일상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경제는 새 신호를 방출하면서 우리가 앞길을 항해하도록 도와준다”며 “그 신호를 포착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08년 금융위기와 중국의 성장세 둔화, 미국의 경기 회복과 인플레이션의 귀환이라는 거대한 흐름도 우리가 그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 의미를 주시하지 않는 신호에서 시작하지만 저자가 다루는 논점은 다양하고 논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물가와 금리뿐 아니라 국가 재정과 국경 장벽, 사회계약의 파기와 충돌, 신흥국의 상황과 그들의 시각,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으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숫자로만 경제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는 “‘수학적 방법론과 전문적 식견이라는 좁은 굴뚝’에 갇히면 과거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데이터는 과거지향적이고 그것으로는 이미 일어난 결과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다보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이 신호가 보내는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변화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일의 경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위험 감수 능력도 기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책은 다양한 신호의 해석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의 말처럼 내일의 경제는 오늘 건설 중이고, 경제 신호는 도처에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전문가들에게 맡겨 둘 게 아니라 스스로 파악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덮고 주변을 다시 보자. 지금 깜박이는 저 신호는 무엇인가.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