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
원작에 충실하면서 무난하게 흘러갔다. 지난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내용을 잘 전달한다. 극적 몰입도가 높아 중소형 뮤지컬로 손색이 없었다. 다만 연극연출가인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가 무대화한 작품임을 고려하면 뭔가 허전함이 남는 무대였다.

‘베니스의 상인’은 서울시뮤지컬단의 올해 첫 정기공연이다. 박 대표가 뮤지컬을 연출한 것은 ‘위대한 캣츠비’ 이후 11년 만이다. 그동안은 주로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 ‘페스트’ 등 개성이 강한 색깔의 연극을 선보였다.

극은 원작처럼 베니스 상인 안토니오가 사랑에 빠진 친구 밧사니오의 청혼을 돕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빚보증을 서며 시작된다. 누구나 잘 아는 고전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장면이 빠르게 교차되고 무대 구성이 감각적으로 이뤄졌다. 밧사니오가 청혼하는 과정과 안토니오의 비극을 번갈아 비추며 대조적인 상황을 잘 그려냈다. 음악은 스스로 돋보이기보다 극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눈에 띄는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는 없었지만 작품에 어울리는 선율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 무대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파격적 해석과 날 선 풍자, 연극적 놀이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기득권층인 안토니오가 유대인인 자신을 무시하자 느낀 모멸감, 이로 인해 형성된 복수심과 고뇌 등 샤일록의 이면을 비춰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샤일록에 많은 비중이 실렸지만 박 대표가 끌어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관객이 샤일록의 내면에 깊이 다가가 공감하긴 어려워 보였다.

샤일록의 부하였던 랜슬롯에 대한 해석도 평범했다. 극에서 광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랜슬롯이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시대를 시퍼렇게 풍자하는 박 대표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으면 어땠을까. 국내 중소형 창작뮤지컬의 공식에 갇히지 않고, 그동안 연극에서 보여준 날 것 그대로를 마음껏 표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다음달 16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