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상상 못 해…판타지 영화 같아"
칸 '황금종려상' 봉준호 "한국영화 100주년에 주는 선물"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상상 못 했습니다. 지금 마치 판타지 영화 같아요."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25일(현지시간)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상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상기된 모습의 봉 감독은 수상을 예상했는지를 묻자 "아뇨"라고 답한 뒤 "차례대로 발표하니 허들을 넘는 느낌이었다. 뒤로 갈수록 마음은 흥분되는데 현실감은 점점 없어졌다. 나중엔 송강호 선배와 '뭐야 우리만 남은 건가? 했다. 이상했다"고 그 순간을 돌아봤다.

그는 "이번은 축구나 월드컵에서 벌어지는 현상 같아서 약간 쑥스럽고 너무 기쁘다"며 "특히 기쁨의 순간을 지난 17년간 같이 작업했던 송강호 선배와 함께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지금 정신이 (없다) 수습과 정리가 안 됐다. 조용히 술 한잔해야 할 것 같다. 초현실적으로 머리가 멍한 상태다"며 "평소엔 사실적인 영화를 찍으려 했는데 지금은 판타지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다"고 웃었다.

그는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며 "고국에 돌아가서 돌팔매는 맞지 않겠구나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봉준호와 함께 나타난 송강호는 "낮 12시 41분에 연락을 받았다"며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연락해준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40분 동안 피를 말렸다"고 웃었다.

송강호는 "저희가 잘해서 받는다기보다는 한국 영화 팬들이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응원하고 격려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한국 영화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봉 감독과 송강호는 "서울에 가 있는 같이 고생했던 '기생충'의 배우들 얼굴이 생각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이날 밤늦게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다"며 "칸 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006년 시네마테크 프랑스에서 김기영 감독의 대규모 회고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프랑스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봤다"며 "제가 상을 받고 '기생충'이 관심을 받게 됐지만, 제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김기영처럼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다. 한국영화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중국의 장이머우와 같은 아시아의 거장을 능가하는 많은 한국의 마스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올 한 해 동안 많이 알려졌으며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적인 영화다'고 했지만 보편적인 메시지가 있었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엄살을 좀 떨었다"며 "해외에서 먼저 소개되지만 한국에서 킥킥거리면서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고 웃었다.

장르 영화 감독이라고 불리는 데 대해서는 "'기생충'은 내가 해오던 작업을 계속해 온 것이고 비록 내가 장르의 법칙을 부수기도 하고 뒤섞긴 하지만 나는 장르 영화 감독"이라며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이 '전원 만장일치'였다고 했는데, 놀랍다.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팬으로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 카페에서 쓰는데, 뒤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음 등에서 여러가지 자극이나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쓴다"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대사와 장면이 어떤 장르적 분위기인지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는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질문에도 답했다.

극 중 인물이 북한 아나운서의 말투를 따라 하는 장면에 대해 "정치적이거나 심각한 메시지가 아니라 영화적 농담이다"며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유머다"고 설명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두 가족을 통해 빈부격차라는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블랙 코미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