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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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너바 부시 매사추세츠공대(MIT) 부총장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난 건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40년이었다. 부시는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학계와 군부의 협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학계에서 그동안 쌓은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루스벨트에게 학계와 산업계, 정부가 함께 협동해 연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증액도 요구했다. 루스벨트는 흔쾌히 이에 응했다. 산·학·관 공동 연구체제의 시동이 걸린 것이다.

루스벨트는 과학 예산을 크게 늘렸다. 1938년 미국 정부의 총예산에서 과학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0.076%였으나 1944년에는 0.5%가 넘었다. 성과는 금방 나타났다. 인재가 모여들면서 새로운 무기가 속속 개발됐다. 레이더, 제트엔진, 통신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무기 개발에 쓰인 갖가지 기술들은 민간에 이전됐다. 이 기술들은 미국인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고용을 이끌었다.

대학도 성장했다. 1940년만 해도 미국 대학 졸업생들은 또래 연령의 6%에 그쳤다. 1960년대에는 15%가 넘었고 현재는 30% 수준이다. 공대의 발전은 비약적이었다. 미국 대학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기지로 변해 나갔다. 정부가 지원하면서 민간 기업들이 대학 성과를 상업화하는 기술혁신 체제가 형성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당을 초월해 R&D 지원에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1957년 옛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궤도에 올리는 순간 미국인들은 다시 기초과학 투자를 떠올렸다. 정부의 R&D 투자는 196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연구 지출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공공부문의 R&D 투자는 GDP의 0.71%에 불과하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기술 패권을 놓고 다퉈야 하는 처지다.

[책마을] 미국 재도약의 길…다시 '기초과학'에서 찾다
조나단 그루버와 사이먼 존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는 함께 쓴 《점프 스타팅 아메리카(Jump-starting America)》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부족이 미국의 경제 침체를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과학기술을 통해 어떻게 미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해 천착한다. 그루버는 ‘미국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경제학자 1위’로 꼽힐 만큼 저명한 교수다. 존슨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저자들은 기초과학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과학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기초 연구가 수행할 분야도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다른 분야에 대한 스필오버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성장과 고용 창출에도 많이 기여한다. 저자들은 “미국이 대적할 수 없는 혁신의 지도자가 된 건 민간 영역의 힘도 컸지만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한 기초과학 연구가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민간 영역이 미국인들의 번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간 기업은 아무래도 수익에 집착하면서 기초과학 연구를 게을리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지금 외부, 특히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기술 혁신을 통해 이뤄낸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이 보기에는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문제다. 저자들은 “대학과 정부, 기업 간 연계가 약화되고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게 가장 큰 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자들과 정치인들 간 불협화음도 커서 지원하는 사업마저 끊기는 게 다반사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미국 정부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할 때 발전을 이뤄왔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기초과학 투자를 GDP의 0.5%포인트만 늘려도 1980년대 경제성장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지원해야 할 분야로 합성생물학과 해저 개발을 통한 각종 희귀 자원 획득 등을 지목한다. 특히 유전자를 변형해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요소를 설계하는 합성생물학 분야에 주목한다. 이런 분야 투자를 통해 발명과 생산성 성장을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기술 패권을 다투는 시점에서 미국의 기초 연구가 부족하다는 외침이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