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의 끝자락이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한낮 더위에 봄 기운도 금세 사라질 것만 같다. 막바지에 다다른 봄이 못내 아쉽다면 산사로 걷기여행에 나서보자. 고즈넉한 분위기의 천년고찰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봄을 떠나보내고 시나브로 찾아온 새로운 계절 여름을 맞이하는 설렘도 느낄 수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

[코스] 통도사 매표소~통도사 무풍한솔로~통도사 부도전~통도사~안양암~수도암~취운선원


경남 양산 하북면 영축산 자락에 있는 통도사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삼보사찰 중 불보종찰에 속한다. 삼보는 불교에서 귀하고 값진 보배로 일컫는 불보(부처)와 법보(가르침), 승보(승가)를 가리킨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종찰이라 한다.
경남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의 통도사 계곡
경남 양산 통도사 암자순례길의 통도사 계곡
가지산도립공원 구역에 있는 영축산(해발 1059m)은 수려한 경관으로 영남의 알프스라는 별명이 붙은 명산이다. 암자순례길은 산 아래로 뻗은 계곡을 따라 솔향 가득한 1㎞의 진입로를 지나 안양암과 수도암 등 주변 암자를 잇는 7.2㎞의 순환 코스다. 양산 8경에 속하는 통도사는 사찰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 무려 813점에 이르는 불교 문화재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4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성보박물관은 시대와 유형에 따른 600여 점의 다양한 불교회화로 유명하다. 박물관 관람은 무료다.

경북 안동 봉정사·개목사 산사탐방로

[코스] 봉정사 매표소~명옥대~일주문~봉정사~영산암~일주문~천등산 산길~개목사~일주문~봉정사 매표소


山寺 가는 '천년 숲길', 초록으로 눈을 씻고 길에서 깨달음을 얻다
경북 안동 서후면 봉정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천년고찰이다. 봉정사의 극락전(국보 15호)과 대웅전(국보 311호), 화엄강당(보물 448호), 고금당(보물 449호) 등은 현존하는 최고(最古) 목조 건물로 손꼽힌다.

산사탐방로 길이는 4㎞.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해발 574m)은 울창한 숲과 수려한 산세 그리고 풍수지리상 명당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학가산, 북쪽은 소백산 연봉, 남동쪽으로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봉정사 동쪽 언덕에 있는 영산암은 작은 정원 안에 소나무와 배롱나무, 작은 석등, 화초 등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부속암자다. 봉정사에서 산길을 따라 1.2㎞ 떨어진 곳에 있는 개목사는 소박하고 단아한 분위기의 절집으로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개목사의 중심 전각인 원통전은 고(古) 건축탐방의 백미로 꼽힌다.

경북 영주 소백산 자락길 11코스

[코스] 부석사~소백산예술촌~숲실~사그레이~양지마~남절~모산~단산지~좌석사거리


백두대간 허리에 속하는 소백산 자락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귀족 출신의 승려 의상이 왕명을 받아 창건한 화엄종의 본산이다.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전해진다. 주불전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신라 때부터 쌓은 것이라 전해지는 대석단, 조사당, 석등, 삼층석탑, 삼성각, 취현암, 응향각 등 다양한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사찰 미학의 극치로 평가받는 경북 영주 부석사
사찰 미학의 극치로 평가받는 경북 영주 부석사
부석사에서 좌석사거리까지 이르는 코스는 초보자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울창한 숲과 계곡을 지나 영주의 드넓은 사과밭과 정겨운 시골마을로 이어지는 풍경이 일품으로 꼽힌다. 총 13.8㎞의 길은 부석사에서 시작해 폐교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소백산예술촌을 지나 백두대간 고치령과 마구령 사이에 있는 마을 사그레이까지 이르는 6㎞의 과수원길과 사그레이에서 남절을 지나 모산까지 4㎞의 올망길, 모산에서 단산지, 좌석사거리까지 물길을 따라 걷는 3.8㎞ 수변길 등 3개 코스로 나뉜다.

전남 순천 남도삼백리 9코스 천년불심길

[코스] 선암사 주차장~선암사~생태체험장~큰굴목재~보리밥집~대피소~송광굴목재~송광사~송광사 상업지구


남도삼백리 9코스 천년불심길은 불교 종단 중 하나인 태고종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태고총림 선암사와 한국 불교의 승맥(僧脈)을 잇는 승보사찰 송광사를 잇는다.
전남 순천 남도삼백리 천년불심길의 조계산 생태체험 야외학습장
전남 순천 남도삼백리 천년불심길의 조계산 생태체험 야외학습장
선암사와 송광사는 순천 송광면과 주암면 일대 조계산의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소백산맥 끝자락에 속하는 조계산(해발 884m)은 피아골, 홍골 등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와 약수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1979년 도립공원에 지정됐다. 자라는 나무 종류가 워낙 다양해 종자 생산을 위한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년불심길은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선암사에서 고갯길을 이용해 서쪽 송광사로 이어지는 12㎞의 탐방길이다. 코스 중간 생태체험장에선 향기 좋은 차를 직접 만들어 맛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완만한 숲길과 계곡길, 마을길을 지나는 코스는 다른 산사 코스에 비해 어려운 편에 속한다.

전남 해남 대흥사 다도의 길

[코스] 대흥사·두륜산케이블카 대형주차장~두륜산 계곡 둑길~매표소~대흥사 숲길~부도답~대흥사 경내~일지암


차(茶)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전남 해남 대흥사
차(茶)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전남 해남 대흥사
전남 해남 삼산면의 대흥사는 국토 최남단 두륜산(해발 703m)의 빼어난 절경을 품은 천년고찰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1500명의 승병과 함께 전장을 누빈 서산대사와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정립한 초의선사의 자취가 깃든 곳이다.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전쟁 등 삼재에도 1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곳이라며 자신의 가사(법의)와 발우(그릇)를 보관하게 했다. 초의선사는 대웅전에서 700m 떨어진 일지암에서 차와 선은 하나라는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몸소 실천했다.

대흥사 다도의 길은 진입로인 2.5㎞ 숲길 산책로를 지나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까지 총 9.2㎞ 코스. 조선후기 명필인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 정조의 친필이 새겨진 편액(액자), 서산대사 유물관, 초의관,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308호) 등 다양한 유물을 둘러보는 역사문화탐방 코스로도 제격이다.

충남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2코스 명상산책길

[코스] 마곡사~천연송림욕장~은적암~백련암~활인봉~생골마을~마곡사


山寺 가는 '천년 숲길', 초록으로 눈을 씻고 길에서 깨달음을 얻다
충남 공주 사곡면 태화산(해발 416m) 중턱에 있는 마곡사를 시작으로 인근 은적암, 백련암 등 암자를 도는 5㎞ 코스다. 명상산책길의 시작과 끝인 마곡사는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봄 풍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신라 선덕여왕 9년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마곡사는 오랜 세월 갖은 역경과 고초를 견디어 낸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 30여 칸에 이르는 대형 사찰이던 마곡사는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간 본연의 기능을 잃은 채 도둑떼의 소굴로 전락했다. 임진왜란 당시엔 대부분 건물이 불에 타는 고초를 겪으며 60년 동안 폐사의 운명에 처해지기도 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처단하고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던 백범 김구 선생은 탈옥 후 마곡사에 몸을 숨겼다. 승려로 신분을 숨기고 지내던 김구 선생이 대광명전 앞에 심은 향나무를 비롯해 5층 석탑, 범종, 청동향로 등 다양한 불교 문화재도 볼거리다.

충북 보은 오리숲길·세조길

[코스] 속리산 버스터미널~오리숲길 입구~법주사 매표소~법주사·오리숲길 끝·세조길 입구~탈골암 입구~세심정 갈림길


山寺 가는 '천년 숲길', 초록으로 눈을 씻고 길에서 깨달음을 얻다
태백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줄기에 속한 속리산 자락의 천년고찰 법주사를 지나는 4.6㎞ 길이의 평이한 코스다. 충북 보은 속리산면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고찰이다.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 등 총 40여 종에 이르는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법주사는 사찰 안팎에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어 미륵 신앙의 요람이라 불린다.

산책로는 오래전부터 절집을 찾는 이들이 걸었던 오리숲길과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속리산을 왕래하던 세조길 구간으로 나뉜다. 오리숲길은 사내리 상가거리에서 법주사 입구까지 십리의 절반인 ‘오리’에서 유래한 2㎞ 길이의 구간이다. 오리숲길에서 법주사를 지나 세조길의 종점인 세심정까지 구간은 약 2.4㎞로 호젓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 등으로 울창한 숲 및 노화 방지와 피로 해소, 성인병 예방 효능이 있는 황톳길, 세조가 앉아 사색을 즐기던 눈썹바위, 달천계곡, 수변 데크길 등 다양한 풍경을 즐기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