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인류학자인 저자는 신경과학과 고인류학 연구를 기반으로 집의 진화적 뿌리를 찾아 들어간다. 인간이 어떻게 집에서 살도록 진화했고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현대 사회의 주거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종합적으로 아우르고 문화적 요소를 통해서도 분석한다. (반비, 368쪽, 1만8500원)
미술가의 작품이 대중을 만나는 곳이 전시장이다. 프랑스 정부가 주최하는 관전(官展) 살롱은 18~19세기 약 150년 동안 서구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 전시회였다. 살롱의 대중적 인기도 엄청났다. 보통 8주간의 전시에 50만 명이 관람할 정도였다. 살롱에는 각양각층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날선 비평과 평가가 이뤄졌다.서양의 현대미술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것도 이런 전시 체제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야수주의와 입체주의가 현대미술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관전 살롱의 보수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민간 주도의 진보적 미술전인 ‘살롱 데 장데팡당’(앙데팡당)과 ‘살롱도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적인 관학의 전통과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제한 없이 출품할 수 있었기에 입체주의는 앙데팡당에서, 야수주의는 살롱도톤에서 처음 소개됐고, 하나의 ‘이즘(ism)’을 형성했다.전영백 홍익대 교수는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미술의 역사에서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고 집단적인 움직임을 형성해 공론을 이끈 장은 전시였다”며 하나의 새로운 조류, 즉 이즘을 형성한 결정적인 순간은 선구적 작품이 대중과 만나게 한 ‘첫 전시’였다고 강조한다. ‘전시의 역사’를 중심으로 20세기 미술사를 다룬 이 책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20세기의 다양한 이즘을 등장시킨 전시를 중심으로 당시 이를 이끈 작가와 비평가, 아트딜러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그런 이름이 지어지고, 세상에 알려졌는지를 흥미롭게 복원한다.당대 주류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조는 언제나 칭찬보다 비난 세례부터 받아야 했다. 1905년 야수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전시한 살롱도톤에서 비평가 루이 보셀은 알베르 마르크의 청동조각상을 보고 “야수의 우리 속에 갇힌 도나텔로”라고 혹평했고, 야수주의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 야수주의의 리더였던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었다. 당시 관객은 이 작품의 거친 기법이 미개하다고 느꼈고, “대중의 얼굴에 내던져진 색채 덩어리”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하지만 현대의 아방가르드를 알아보는 소수의 감식안이 있었기에 새로운 이즘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던 레오 스타인과 거트루드 스타인 남매는 가공하지 않고 강렬하게 여성성을 표현한 데 주목했고, 전시 마감 1주일 전 500프랑의 큰돈으로 작품을 구입했다.세 아이를 둔 35세의 가난한 작가 마티스는 이들 덕분에 살림이 폈을 뿐만 아니라 파리 예술계의 중심 네트워크에 발을 들였다. ‘세기의 아트딜러’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 베르트 베이유가 다른 야수파 작가들을 후원한 것도 아방가르드 미술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입체주의를 형성한 주역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 체제와 경제구조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이에 빠르게 동조한 작가가 피카소와 브라크였다.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개인 갤러리가 전통적인 살롱 체제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고, 전문 화상 칸바일러와 독점 계약한 덕분에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주의를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피카소의 첫 입체주의 작품으로 알려진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1907년 완성 당시에는 동료 화가와 화상들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1930년대 말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면서 걸작으로 인정받게 됐다.20세기는 숱한 이즘의 시대였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가 파리에서 현대미술의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독일에선 표현주의가 등장했다. 스위스에선 뒤샹이 이끈 다다이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쇼’는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미국 무대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3주일 만에 8만8000명이 관람한 이 전시는 유럽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던 미국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했다. 아모리쇼를 계기로 미국에 유명 수집가들이 등장했고, 새 갤러리와 시장도 생겨났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미술의 터전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전되면서 추상표현주의, 누보레알리즘,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다양한 미술사조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됐다.야수주의부터 개념미술까지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와 작가, 전시와 흐름을 다 짚고 난 저자는 “더 이상 새로운 이즘은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이제는 제한적 범주로 미술을 분리하는 방식의 이즘을 지양하게 됐다는 것. 그럼에도 이즘은 미술을 이해하는 유효한 방식이다.저자는 “이즘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며 사람의 성격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듯 야수주의, 큐비즘부터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즐기라고 제안한다.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올 1월 출간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면서 ‘철학’을 제목에 붙인 신간이 심심찮게 보인다. 예상치 않았던 돌풍에 인문 분야에 ‘철학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이 책을 쓴 야마구치 슈는 컨설팅회사 콘페리헤이그룹에서 일하는 컨설턴트다. 조직 개발, 혁신, 인재 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로 일본 광고회사 덴쓰,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도 일했다. 게이오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철학사상과 개념을 가져와 경영 현장에 접목해 설명한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감정을 의미하는 니체의 ‘르상티망’이란 개념을 통해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는 의미를 풀어내는 식이다. 이 책의 국내 주요 독자층은 30~40대 남성이다. 20~30대 여성층이 베스트셀러를 결정해온 근래 독서시장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철학에서라도 각박한 현실 속 ‘삶의 무기’를 찾으려는 절실함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니체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리언 페스팅어의 ‘인지 부조화’, 융의 ‘페르소나’ 등을 경영 전략과 현실에 접목한다.‘페르소나(persona)’는 최근 방탄소년단이 내놓은 새 앨범의 부제기도 하다. ‘외적 인격’ ‘가면을 쓴 인격’을 의미하는 페르소나는 ‘얼굴’ ‘가면’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에서 유래했다. 방탄소년단은 “페르소나는 사회적 자아를 의미한다”며 “부정적인 의미의 ‘겉껍데기’이기만 한 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심리학자 머리 스타인이 융의 이론에 대해 쓴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새 앨범의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다. 그 덕분에 2015년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뒤 베스트셀러 순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던 이 ‘쉽지 않은 책’이 지난달 인문 분야에서 10위권까지 올라갔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코너엔 어느새 ‘BTS(방탄소년단) 새 앨범에 영감을 준 책’이라는 수식이 친절하게 붙어 있다. ‘어려워서 읽다 만 책을 BTS 때문에 다시 본다’ ‘BTS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됐다’ 등 온라인 교보문고에 올라온 이 책의 리뷰 53건 대부분이 최근에 작성됐다.이유야 어찌 됐건 그저 책과 철학,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괜히 반갑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의 힘》에서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고 했다. 철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철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답한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이다.”hit@hankyung.com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은 가난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8월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마을을 포위하면서 이들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IS는 광기와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IS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은 집단 학살되거나 강간당했다. 이곳에 살던 여성 나디아 무라드의 삶도 무너졌다. 오빠 여섯 명과 어머니는 죽임을 당했고, 무라드는 IS의 성노예가 됐다. IS가 팔아넘긴 수천 명의 야지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IS 대원에서 또 다른 IS 대원에게 넘겨지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더 라스트 걸》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디아 무라드가 쓴 자서전이다. 무라드는 생생한 증언을 통해 IS 테러와 폭행의 실태를 고발한다. 그는 IS로부터 어렵게 탈출한 뒤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16년엔 집단학살과 인신매매 생존자를 돕는 프로그램 ‘나디아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같은 해 유엔 최초의 ‘인신매매 생존자 존엄성을 위한 친선대사’로 임명됐다.이 책엔 그가 겪은 강간과 폭행, 목숨을 건 두 번의 탈출 과정이 담겨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이 겪은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인권을 유린당한 모든 여성과 난민의 목소리다.무라드가 탈출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고통을 이해한 수니파 아랍인 덕분이었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직면해야 한다”며 “하지만 세계 많은 사람이 침묵하고 방관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세계 곳곳에선 전쟁 성폭력과 학살이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 르완다 내전, 미얀마 소수 민족 로힝야족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말한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하는 사연은 내가 테러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다. 테러범을 법정에 세울 때까지 이 무기를 사용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 (공경희 옮김, 북트리거, 392쪽, 1만7800원)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