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23명이 함께 쓴 《공존과 지속》의 주제별 좌장을 맡은 장대익(왼쪽부터), 권혁주, 김기현, 이정동 교수. /민음사 제공
서울대 교수 23명이 함께 쓴 《공존과 지속》의 주제별 좌장을 맡은 장대익(왼쪽부터), 권혁주, 김기현, 이정동 교수. /민음사 제공
서울대 교수 23명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산업공학과 사회학이 만났고,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이 마주앉았다. 같은 캠퍼스를 누비면서도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전공의 교수들이 어우러졌다. 모임의 열쇳말은 ‘공존과 지속’. 풀어쓴 토론 내용만 원고지 2000장 분량이 훌쩍 넘었다. 2015년 처음 토론의 장이 마련된 이후 4년 만에 논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공존과 지속》(민음사)이 최근 출간됐다.

지난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는 주제별로 좌장을 맡은 네 명의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정동 산업공학과 교수는 에너지시스템, 권혁주 행정대학원 교수는 교육, 김기현 철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장대익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유전기술을 주제로 한 모임을 이끌었다.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 저자로 잘 알려진 이 교수는 “거대한 사회 구조 변화와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기술을 주제로 잡았다”며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해석에서 더욱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 할 젊은 세대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 로봇의 부상 등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책을 읽다보면 토론 과정에서 이공계와 인문사회대 교수들의 첨예하게 엇갈리는 생각과 의견이 교차하고 서로 침투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기술과 관련해 보통 공학자들은 위험한 유토피아, 인문사회학자들은 근거없는 디스토피아에 빠져 있다”며 “하지만 논의를 거듭해 가면서 공학계는 신중해지고 인문사회 쪽은 현실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그 자체도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단순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어느새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바꿔놓는 기술의 의미도 짚어본다. 권 교수는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교육은 학술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이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창조경제나 4차 산업혁명 관련 논의에서도 정작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려는 방향은 어디인가’가 빠져 있다”며 “지식공동체가 화두를 던지는 이번 작업은 하나의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존과 지속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기술을 우리의 삶에 최적화해 가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다.

이 교수는 책 서문에서 이런 과정을 ‘지적인 산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지향점에 따라 기술의 패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품은 고민을 담은 기술이 나올 수도 있죠. 지금까지의 추격형 기술이 아니라 그게 바로 우리 고유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