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여신 > 타테오 쿤체(1727~1793) 유화, 1754년작, 114㎝×163㎝.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 운명의 여신 > 타테오 쿤체(1727~1793) 유화, 1754년작, 114㎝×163㎝.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운명이란 무엇인가? 우리 대부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국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단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일상의 일들은 결국 나의 처지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스스로 광고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변모해 결국 나의 운명이 된다.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운명은 장님’이라고 말했다. 로마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두 눈을 가린 채 커다란 물레를 돌린다. 포르투나는 세상을 운행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인간들에게 무작위로 부여한다. 어떤 이는 통치자로, 어떤 이는 예술가로, 어떤 이는 시인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일한다. 포르투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오만한 자’라고 불렀다. 오만한 자는 장님이 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인식할 수 없다. 자신이 자초한 불행의 희생자가 된다.

습관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 에페소스 출신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운명이 만들어지는 첫 지점에 대해 그리스어로 이렇게 말했다. “헤 에토스 안트로포 다이몬(he ethos anthropo daimon).”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습관이 인간에게 운명이다.” ‘다이몬’이란 오늘날 영어에서 ‘악마’라는 의미가 있는 디몬(demon)의 어원이다. 본래 의미는 ‘인간이 도저히 조절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천재성’이다. 다이몬은 ‘천재성’으로 더 많이 번역된다. 헤라클리토스는 이 간결한 문장에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습관은 내가 자주하는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 만들어낸 나의 개성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습관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수정하며 개선하지 않고 자신에게 갑자기 다가온 사건을,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탓한다. 인간이 자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의 습관이고, 습관이 다른 사람에게 표현된 모습이 ‘개성’이다. 그(녀)의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자주 표현되면 그것이 습관이 된다. 습관이 쌓이면 내가 활동하는 영역, 즉 환경이 되고 그 환경이 굳어지면 운명이 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운명을 탓하지만 자신을 관찰하고 수련하는 자는 자신을 꾸짖는다. 매일 나에게 엄습해오는 일들을 행운으로, 혹은 불운으로 바꾸는 주체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행운과 불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보낸 당부의 편지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운명을 두 그리스 단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한 단어는 티케(tyche)이고 다른 하나는 에우티케(eutyche)다. 이들 단어는 각각 ‘운명’과 ‘행운’이란 뜻이다. 티케는 그 자체가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티케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운이 되기도 한다. 행운이란 뜻의 그리스 단어 에우티키아(eutychia)에서 접두어 에우(eu)는 최선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몰려온 사건들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운명’이란 곧 ‘행운’이다. 반면 불운이란 그리스 단어 아티키아(atychia)는 부정을 의미하는 접사 ‘아(a)’가 붙었다. 불행이란 자신에게 몰려오는 일상의 일들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태도다. 사건에 휘말려 반응하는 데 급급하다 결국 자신이 초래한 반응 때문에 불행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는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반응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한탄

필록테테스는 망각의 섬 렘노스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불행한 인간이었다. 그리스 군대는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필록테테스가 가진 활과 화살이 필요하다는 신탁을 받고 부리나케 렘노스로 돌아와 그를 설득한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독사에 물려 썩어들어간 발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고 기절한 필록테테스로부터 활을 빼앗아 트로이로 갈 참이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외딴 섬에서 자신을 방어할 무기이자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인 활을 빼앗긴 필록테테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는 차마 필록테테스를 버리고 매정하게 갈 수 없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가 거주하는 동굴로 다시 돌아와 묻는다. “나는 당신에게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여기 머물면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로 결심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와 함께 출항하지 않겠습니까?”(1273~1274행) 필록테테스는 자신의 생계 수단인 활을 탈취한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느낀 연민의 감정은 물론 진실이었다. 그는 제우스신의 존엄을 두고 맹세하면서 필록테테스의 활을 돌려준다.

그 순간 오디세우스가 동굴 속으로 들어온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왕자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의 예언을 신봉했다. 그리스인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필록테테스와 그의 활 모두가 필요하다. 필록테테스는 자신의 원수인 오디세우스를 보자 활을 당긴다. 그의 화살은 목표로 한 어느 누구도 비껴간 적이 없다. 네오프톨레모스는 그의 손을 잡아 막으며 말한다. “아, 그런 행위는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최선이 아닙니다.” 소포클레스가 ‘최선’이란 의미로 사용한 그리스어 콜론(kolon)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이르는 단어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의 처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들은 신들이 주신 운명(티케)을 필연으로 알고 참고 견뎌야 한다.”(1317~1318행) 이어 그의 병에 대해서도 말한다. “당신은 신이 보내신 운명(티케) 때문에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크리세의 지붕이 없는 신전을 숨어서 지키는 뱀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려 했기 때문입니다.”(1326~1328행) 필록테테스가 온몸에 퍼지고 있는 독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으로 트로이로 가서 명의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두 아들을 만나 치료받은 뒤 힘을 합세해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일이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제시한 방법은 그의 건강뿐만 아니라 명성도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필록테테스는 네오프톨레모스의 간절한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와 전우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한다. 필록테테스는 불구가 된 발을 이끌고 트로이로 돌아가 그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상상에 치를 떤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가 친구로서 진정을 담은 말이 필록테테스를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로 적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한다.

헤라클레스의 격려

두 영웅이 동굴을 떠나 항구로 내려가려는 순간, 동굴 위에서 헤라클레스 신이 환영으로 등장한다. 그는 제우스 신의 계획을 알려주려 왔다. “나는 그대에게 내 운명을 알리고 싶다. 너도 알겠지만, 불멸의 영광을 얻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노고를 참고 견뎠는지 알 것이다. 그럼 잘 알아두어라. 그대의 고통을 통해 그대로 영광스런 삶을 얻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너는 저 사람(네오프톨레모스)과 함께 트로이 땅으로 가 먼저 몹쓸 병을 치유받으라. 너는 군대에서 가장 탁월한 전사로 인정받아 이 모든 재앙의 장본인인 파리스를 내 활로 쏘아 죽이고 트로이를 함락할 것이다.”(1418~1427행) 헤라클레스는 필록테테스가 누릴 미래의 영광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신이 정한 운명이었다. 미래에 일어날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그것을 위해 정진하는 마음이 경건(敬虔)이다. 헤라클레스는 “경건은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는다. 인간과 함께 살든 죽든,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1443~1444행)고 말한다. 경건이란 뜻의 그리스 단어 유세베이아(eusebeia)는 ‘신들을 위한 인간의 당연하고 옳은 행위’란 의미다.

"트로이전쟁 끝낼 영웅" 신의 뜻 알고 섬을 떠나는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는 마침내 렘노스 섬을 떠난다. 그는 네오프톨레모스와 헤라클레스의 진심어린 말을 통해 신의 뜻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기 위해 트로이로 출항한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사실은 신들이 오래전 정한 운명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경건을 품은 필록테테스에게 불운이 아니라 행위를 위한 준비였다. 마지막으로 합창대가 노래한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떠나요! 하지만 먼저 무사히 돌아가게 해달라고 바다의 요정에게 기도해요!”(1469~1472행)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