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세계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 박홍경 옮김
라이팅하우스 / 692쪽│3만5000원
지난 2월 미국 백악관 아이젠하워빌딩에서 열린 미·중 3차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양측 대표단이 마주보며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미국 백악관 아이젠하워빌딩에서 열린 미·중 3차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양측 대표단이 마주보며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아메리카 항해를 함께한 17척의 배는 서양의 거의 모든 작물과 가축을 신세계로 운반했다. 돼지의 약진은 단연 돋보였다. 천적은 없고 자원은 풍부한 신대륙에서 개체 수가 빠르게 불었다. 말과 소도 마찬가지였다. 가축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소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죽과 발굽만 떼내 팔았다. 버려진 고기는 부패했다. 19세기 후반 냉장선이 발명되면서 남아돌던 고기도 유럽 대륙에 상륙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를 싼값에 제공할 수 있게 되자 유럽의 도축업자들은 무너졌다.

바다를 건너온 신대륙의 작물도 유럽인의 생활과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감자와 옥수수는 유럽의 식단을 바꿔놨다. 재배 면적당 밀보다 칼로리가 높은 작물들 덕에 농민이 잉여 농산물을 제조품으로 교환하는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책마을] 美·中 무역전쟁의 뿌리, 아편전쟁에서 찾다

금융이론가이자 경제사학자인 윌리엄 번스타인은 《무역의 세계사》에서 무역이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조명한다. 《투자의 네 기둥》 《부의 탄생》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그의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2008년이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다시 주목받으면서 마침내 국내에도 번역 소개됐다.

책의 서문은 저자가 어느 해 9월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베어먹은 뉴질랜드산 사과로 시작한다. 유럽산 사과를 한창 수확하는 시기에 정작 유럽인들이 손에 든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사과다. “무역의 위대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책은 초기 인류의 교역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 교역의 축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건너 인더스강까지 4800㎞를 아울렀다. 로마가 멸망하던 시기 재화는 많은 중개인의 손을 거쳐 런던에서 한나라 수도인 장안까지 도달했다. 이후 무슬림이 아라비아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하면서 유럽은 1000년 가까이 주요 교역의 무대에서 배제됐다.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돌아가는 데 성공하면서 비로소 서양이 상업을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후 무역의 요충지를 차지하는 세력은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으로 빠르게 교체됐다.

책은 이 같은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하면서도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비교와 해석을 곁들어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간다. 덕분에 700쪽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상대적으로 덜 무겁게 다가온다. 과거의 역사는 자유무역을 놓고 거대한 이념적 분열을 겪고 있는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세계화는 단편적이거나 여러 사건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500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전개된 과정”이라며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살펴보면 급변하는 국제무역의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10년 전 저자는 이미 책에서 베링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 고조, 말라카 해협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미·중 갈등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미국으로 밀려드는 인도 인력은 18~19세기 자유무역으로 피해를 봤던 인도의 ‘짜릿한 복수’라는 시각, 아편전쟁 당시 서구 열강에 유린당한 중국에서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의 뿌리를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돌아보면 교역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변함없이 긍정적이다. 교역은 재화를 풍부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지적, 문화적 자본을 늘리고 이웃에 대한 이해도 높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대방을 말살시키는 대신 물건을 파는 욕망을 심어줬다”며 “인류가 점차 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무역을 통해 이웃이 죽기보다는 살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물건을 나르고 교환하는 본능은 인간 고유의 속성이고 그것을 억압하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다양한 일화를 솜씨 좋게 엮어내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세계 지도를 옆에 놓고 옛 지명을 찾고 이동경로를 확인해가면서 보면 책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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