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길 화백이 청작화랑의 개인전에 출품한 ‘봄의 기운-산동’.
오용길 화백이 청작화랑의 개인전에 출품한 ‘봄의 기운-산동’.
붓 잡은 지 50년, 오용길 화백(70)은 한결같이 한국화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장식적인 것이나 시류에 빠지지 않고 전통 수묵담채화를 꾸준히 보여줬다. 27세 때인 197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찍이 두각을 나타낸 그는 선미술상, 월전미술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굴곡 없이 평탄한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전통 한국화의 명맥을 이어온 그의 50년의 공력(功力)과 연륜은 이제 고향집 앞마당의 홍시처럼 한껏 무르익었다. 한국화의 정체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지켜야 할 우리의 자산이라는 그의 생각이 빛을 발한다.

지난 25일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시작한 그의 개인전은 서양화가 대세인 화단에서 ‘지필묵의 전통은 한국 미술의 장점이면서 정체성’이라는 점을 단번에 증명해 보이는 자리다. ‘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전남 광양을 비롯해 서울 인왕산, 경남 함양과 강원의 설악산 등을 찾아 마음속에 풍경을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되살려낸 30여 점을 내놨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 화백은 “한국화와 서양화는 엄연히 지필묵이 다르고 그 맛 역시 같을 수 없다”며 “내 그림은 수묵의 특성을 살리면서 서양의 풍경화적인 요소를 수용해 그린 풍경화”라고 힘줘 말했다.

현장 사생에 충실한 풍광은 먹이 번져 퍼져나가는 부드러움으로 따듯하고 정겹다. 빛을 따라 점점이 붓질한 점묘 기법의 독특한 변주는 수묵담채와 만나 은은하게 반짝거린다. 겨울에서 이제 막 깨어난 갈색과 하얀 빛도 점점이 화선지에 비친다. 온유한 성격의 작가는 자신의 몸에서 걸러낸 감각적이면서 깔끔한 매무새로 전원의 서정을 단정하면서도 감칠맛 나게 조경했다.

자연의 단순 재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인 작품들은 고향의 장맛처럼 감성이 우러나고, 무엇보다도 봄을 생각하게 한다. ‘봄의 기운’ 시리즈에선 매화와 벚꽃, 노란색의 개나리, 산수유 등이 산촌이나 돌담, 계곡 주변 등에 자리하고 있다. 엄마와 아이가 고목에 핀 매화를 쳐다보는 뒷모습이 보이고, 한쪽에는 꽃 속에 파묻힌 기와집과 가파른 바위가 위세를 드러낸다.

또 다른 작품에는 붉게 물든 꽃가지를 품은 산세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붓질했다. 서울 수송동과 인왕산, 안양의 예술공원, 충남 단양의 사인암, 안동의 만휴정, 경북 청송의 주왕산처럼 장소를 알 수 있는 작품 제목도 있다.

수묵의 맛을 한껏 살리고 풍부한 색감으로 ‘기운생동’을 묘사한다는 그는 “내 그림을 수채화 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붓의 선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9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