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투자 귀재' 피터 틸에게 트럼프는 '정치계 우량주'였다
피터 틸은 ‘스타트업의 성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핀테크 시대를 개척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였다. 2002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해 큰돈을 벌어 유명해졌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로 참여했다. 50만달러 투자로 17억달러를 회수해 3400배의 수익을 올렸다. 빅데이터 분석 회사 팰런티어를 공동 창업해 기업가치 127억달러의 회사로 키우기도 했다. 세계 최대 숙박공유회사 에어비앤비, 우주개발 기업 스페이스X,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 등에도 투자해 성공한 ‘투자의 귀재’다.

독일의 기업가이자 언론인인 토마스 라폴트는 《피터 틸》에서 기업가로서 그의 성장 과정과 투자 철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틸은 독일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9세 때 실리콘밸리로 이사를 가 그곳의 자유분방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공학 분야가 유명한 스탠퍼드대에 들어가서는 철학을 전공했다.

틸의 세계관과 투자를 판단하는 방식은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유명한 철학자인 르네 지라드의 영향을 받았다. 지라드는 모방 이론과 경쟁을 핵심 사상으로 삼았다. 인간은 모방을 하는 본성이 있는데 모방이 경쟁을 낳고 경쟁은 더 큰 모방을 낳는다는 것이다. 틸은 이 사상을 투자에 접목했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아닌, 남과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창업하거나 그런 회사에 투자하는 전략을 고수한 것이다.

틸은 자신의 책 《제로 투 원》에서 ‘0에서 1을 창조하는’ 파괴적 사고만이 스타트업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전략과 판단은 2016년 대선에서도 통했다. 틸은 실리콘밸리의 유명 기업가 중 거의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에게 거액을 기부한 사람이다. 그에게 트럼프 정권은 ‘낡은 정치 비즈니스 모델을 깨뜨릴 스타트업’이었다.

틸과 워런 버핏을 비교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버핏은 제조업 중심인 구경제의 대표 투자자고 틸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신경제의 투자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버핏은 자신이 잘 아는 소수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틸도 실리콘밸리 반경 20마일 이내에서 투자한다. 버핏은 ‘남들이 공황에 빠졌을 때 사고 남들이 탐욕에 사로잡혔을 때 판다’는 원칙이 있다. 틸 역시 닷컴버블 붕괴 직후 남들이 꺼리는 페이스북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