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욱 개인전에 전시된 설치작품 ‘작은 아이는 더 멀리서 달려왔다’.
양정욱 개인전에 전시된 설치작품 ‘작은 아이는 더 멀리서 달려왔다’.
30대 설치작가 양정욱 씨(37)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겪은 서사와 뭉클한 감정을 크고 복잡한 장치미학으로 형상화한다. 그는 머릿속에서만 머물던 생각들을 나무와 모터, 금속과 실, 플라스틱 등 하찮은 재료에 색과 질감, 소리, 무게를 얹어 유형의 시각언어로 ‘소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을 조형화한 그의 작업은 2015년 일본 도쿄 신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소개돼 그를 단번에 미술계 ‘이머징 스타’로 만들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시작한 양씨의 개인전 ‘어제 찍은 사진을 우리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는 현대인의 다양한 생각을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중심 소재를 ‘단체사진’으로 잡았다. 특정한 날 또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촬영하는 ‘단체사진’ 속 경험과 행위를 다양한 구조물에 대입해 예술로 승화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전시장을 채운 10여 점의 설치작품은 사진 속에 담긴 기억과 사진을 찍으며 벌어지는 상황을 형상화한 근작들이다. 사진에 담긴 감정과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어 관람객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양씨는 “사진의 성격과 기록성을 단지 한 대의 기계로 온전히 대신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시간, 장소, 상황별로 전문성을 끼워 맞추는 다양한 기기를 합작해 만들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속 ‘셀피(selfie)’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현대인에게 특정한 날 또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벽에 걸어둔 단체사진이 던져주는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로 치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맥거핀(macguffin)’ 같은 것이다.

조형물은 저마다 역학관계를 이루는 여러 부분으로 엮여 특정한 동작을 수행한다. 나무와 실 모터가 복잡하게 얽힌 기계가 느릿느릿 바퀴벌레처럼 꿈틀댄다. 나무와 금속·실이 느리지만 단단하게 부대끼며 삐걱거리고, 그 진동과 소음은 촉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전시장의 백색 조명은 작품에 크고 또렷한 그림자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공간에 묘한 여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작품과 제목은 무언가의 접점에서 피어나는 동반 상승, 이른바 시너지”라며 “전시회 주제에 관한 보다 깊은 통찰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