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작고한 시인 기형도.
1989년에 작고한 시인 기형도.
문학계가 기형도 시인 작고 30주기를 맞아 그의 기일인 3월 7일에 맞춰 기념 시집을 출간하고 추모 행사도 잇따라 개최한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안개’로 등단한 기형도는 시적 매혹과 문학적 성찰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며 한국 현대 시사(詩史)를 새롭게 썼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이다. 1989년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 속의 검은 잎》은 일상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적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보여주며 문단으로부터 한국 시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30세에 요절한 기형도의 시는 이후 30년 동안 독자와 문학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시적 생명력을 유지해오고 있다.

《입 속의 검은 잎》을 발간했던 문학과지성사는 기형도 작고 30주년을 기념해 7일 특별한 시집 두 권을 출간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시집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이다. 기형도가 남긴 시들을 오롯이 묶은 ‘전집(全集)’이다.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 97편 전편을 모아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재구성했다.

그를 기리는 두 번째 시집 《어느 푸른 저녁》도 특별한 의미를 담아내 눈길을 끈다. 1989년 시집 초판 발행 이후 30만 부 돌파를 기념하고 타계 30주년을 맞아 젊은 시인 88인이 쓴 88편의 시를 모은 ‘헌정 시집’이다. 강성은, 박소란, 서효인, 신용목, 이소호, 이제니 등 젊은 시인들이 시적 매력과 비밀을 숨겨둔 기형도 시어와 제목, 분위기를 모티브 삼아 각자 언어로 소화해 새로운 시로 탄생시켰다. 문학과지성사 측은 “젊음의 기준이 기계적일 순 없지만 기형도 시가 세대를 이어가는 청춘의 통과의례이자 상징이었던 만큼 2000년대 이후 등단자를 기준으로 삼았다”며 “한국 현대시단의 가장 젊은 에너지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헌정시집 출간·심포지엄·詩 낭독…기형도의 풋풋한 文香
비매품이지만 기형도 시를 독일어로 번역해 그림과 함께 담은 시집 《전문가》도 출간됐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인 김유 작가가 종이판화, 수채화, 콜라주, 스탠실, 스탬핑 등 다양한 미술 기법들을 혼합해 만든 그림책이다. 크리스티안 바이어 서울대 독문과 교수가 독일어 번역을 맡았다.

다채로운 추모 행사도 마련됐다. 7일 오후 7시 서울 동교동 다리소극장에선 ‘기형도 30주기 낭독의 밤-어느 푸른 저녁’이 열린다. ‘39년 시간의 힘을 거스르며 시대를 이어온 길 위의 상상력, 기형도’라는 주제로 90분 동안 문학을 비롯해 연극, 영화, 음악 등 예술계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 중인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저마다 기형도 시를 접한 이야기와 헌정시 낭독, 노래를 선보인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연세대 문과대 백주년기념홀에선 ‘신화에서 역사로―기형도 시의 새로운 읽기’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기형도 시의 특질과 문학사적 위치를 새롭게 조망해 기형도 시 연구의 차원을 새롭게 열고자 마련됐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생전 문단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기형도 시는 이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고전, 가장 젊은 고전 반열에 올랐다”며 “그의 시와 함께 보낸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신간과 각종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보이그룹 아스트로는 지난 1월 발표한 새 앨범에 기형도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곡을 싣고 잡지 영상을 직접 촬영했다. 멤버 전원이 기형도의 시 ‘어느 푸른 저녁’과 같이 저녁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촬영하고 ‘어느 푸른 저녁’을 멤버 각각의 목소리로 녹음해 담았다. 이 영상은 보그(보그코리아)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