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작화랑의 기획전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에 출품된 전뢰진의 ‘바다나들이’.
청작화랑의 기획전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에 출품된 전뢰진의 ‘바다나들이’.
미술 장르에도 서열이 있을까.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회화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며 조각 장르보다 우위를 누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다다이즘이 기존 예술과 관습에 반기를 들고 나온 뒤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돌과 철은 물론 종이, 유리, 미디어아트와 혼합재료(mixed media) 등 다양한 재료와 형상성을 지닌 3차원 조형아트가 현대미술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이 6일부터 시작하는 새봄맞이 기획전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는 3차원 조형예술과 재료의 다양성을 입체적으로 점검해보는 자리다. 오는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작고 작가 유영교를 비롯해 돌 조각의 거장 전뢰진, 김성복, 고성희, 김승우, 김창희, 장형택, 양태근, 신재환, 백신기 씨 등 내로라하는 조각가 12명의 작품 30여 점을 내보인다. 전통 돌 조각을 비롯해 유리 조각, 종이 부조, 동전 조각 등으로 진화하는 조형미술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좋아한 조각가로 알려진 유영교 씨의 돌조각이 관람객을 사색의 세계로 안내한다. 1999년을 기점으로 작가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돌에서 철로, 정지된 형태에서 움직이는 조형물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사랑’이란 제목이 붙은 이번 출품작은 인간의 체온이 그대로 전달되는 돌로 두 연인의 뜨거운 사랑을 투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90대 전뢰진 홍익대 명예교수는 소녀를 등에 태운 바다표범의 모습을 잡아낸 돌조각을 들고 나왔다. 70년 동안 조각 재료로 돌에만 관심을 둔 그는 “돌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점에서 인연인 듯하다”며 “내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니까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신화 속의 동물 해태와 용, 도깨비, 호랑이 등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형상화한 김성복 성신여대 교수는 마호가니 나무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부조 작품을 내놨다. 피에로가 춤추는 모습을 담아낸 작품은 조명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느낌이 달라 실내 조각으로는 일품이다.

지난해 뉴욕 마이애미아트바젤에서 종이 조각으로 주목받은 김희경 수원대 교수의 꽃잎, 철과 PVC를 활용해 사람들의 모습을 나무처럼 꾸민 양태근의 조각, 돌을 원료로 애틋한 부부애를 묘사한 김창희의 작품, 수십만 개의 동전을 활용해 인간을 형상화한 김승우의 조각, 브론즈와 대리석을 결합해 결혼 이야기를 풀어낸 이행균의 작품, 유리와 돌을 재료로 매끄러운 질감과 투명한 듯한 색감을 묘사한 신재환의 추상 작업도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조형예술의 소장 가치와 재판매 가능성이 커져 소비도 점차 늘고 있다”며 “회화보다 단가가 낮고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