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클래식으로 편곡해 차별화…스토리를 압도한 '악마의 연주'
뮤지컬 중에 이토록 한 배우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관객을 압도하는 연주 실력을 펼쳐야 하고 노래, 연기까지 매끄럽게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지난 15일 개막한 뮤지컬 ‘파가니니’(사진)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고난도 기교를 자랑한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얘기를 담고 있다. 파가니니처럼 뛰어난 연주를 실제 선보여야 하는 배우의 역량에 온전히 공연의 성패가 달릴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공연은 성공에 가까웠다. 서울대 음악대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인 ‘콘(KoN)’이 파가니니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콘은 뮤지컬 ‘모비딕’ ‘페임’ 에 출연하며 바이올린 실력을 뽐냈던 인물. 그런 경험 덕분인지 ‘악마적’일 만큼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타이틀에 걸맞게 강렬한 연주로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파가니니 음악을 록클래식으로 편곡해 정통 클래식 공연과 차별화하고 뮤지컬다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7분 남짓한 독주 장면들도 훌륭히 소화해냈다.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 파가니니의 대표곡은 연주자에게 부담이 큰 작품이다. 신들린 듯한 기교를 펼쳐야 할 뿐만 아니라 워낙 잘 알려진 음악이라 작은 실수라도 하면 객석에서 곧장 알아챈다. 이런 부담감에도 콘은 격정적이면서 애절한 느낌을 살려 이 곡들을 소화해냈다. 밝은 빛깔로 염색한 머리에 딱 붙은 가죽바지를 입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참신해 보였다.

하지만 스토리 측면에선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파가니니를 실제 악마로 몰아가는 신부 루치오와의 갈등이 주요 스토리인데, 다소 길고 불필요한 장면이 많았다. 또 다수 캐릭터에 이야기가 분산됐다. 루치오 신부뿐만 아니라 파가니니를 존경하고 따르는 샬롯, 샬롯의 약혼자이자 파가니니를 음해하는 콜랭 등 캐릭터마다 부여된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도 많고 길다는 느낌을 줬다. 바이올린 선율 덕분에 스토리의 단점이 덜 부각되긴 했지만 이를 보완한다면 더 완벽한 무대가 될 것 같다. 공연은 다음달 31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