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도시 서울에는 예술가의 흔적이 담긴 역사적인 장소가 많다. 빌딩 숲에 가려진 동네 작은 골목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오래전부터 알던 길이지만 이 길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소박한 풍경 속에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의 골목 뒤안길,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길을 걸어보자.
철강단지로 모여든 예술가, 문래 예술촌
철공과 예술의 만남으로 재탄생한 ‘문래 예술촌'. 철강산업의 메카였던 영등포구 문래동은 일제강점기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방적기계 ‘물레’의 이름을 따서 문래동이라 불렀다. 공장이 많아 이 지역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철공소를 하나둘 외곽으로 옮겼고 문을 닫은 공장의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철공소 사이사이에 공방과 카페가 들어섰다. 미로를 탐험하듯 들어선 좁은 골목 담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철공소 골목은 낮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용접 불꽃이 튀지만 공장 문을 닫는 저녁과 주말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셔터가 내려지면 셔터에 그림이 예술작품처럼 피어나고 골목은 갤러리가 된다. 철강단지답게 철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는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리기도 한다. 철공과 예술의 독특한 만남이 문래창작촌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예술가들의 혼이 깃든 성북로
만해 한용운이 살던 성북로의 ‘심우장'. 수려한 북악산 자락에 있는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동네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나오면 산을 오르는 언덕길까지 예술가의 흔적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최순우 옛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생을 마친 1984년까지 살던 집이다. 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 초에 지어진 한옥으로 시민들의 후원과 기증으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시민문화유산 1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는 선생의 유품, 친필 원고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즈넉한 한옥을 나와 산을 향해 걸어가면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유출될 위기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이를 보관하고자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에게 설계를 맡겨 1938년 미술관을 완공했다. ‘아름다운 문화재를 지키는 건물’이라는 뜻의 보화각(保華閣)에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성북동 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한옥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이 있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1933~1946년 월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벼루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소설가의 의지를 담아 ‘수연산방’이라 이름 지은 곳에서 ‘달밤’ ‘돌다리’ ‘가마귀’ ‘황진이’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성북동 언덕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살던 심우장이 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이며 승려였던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11년을 머물렀다.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고 소박한 집은 한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북향집이다. “남향하면 바로 돌집(조선총독부)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낫겠다”며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을 지었다.
예술인의 마을 원서동길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살던 원서동길 가옥 화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진 원서동은 일제강점기 왕이 머물렀던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고 그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의 유래는 가슴 아픈 일이나 지금 원서동에는 화가와 예술인이 모여 살고 있다. 전통 공방과 붉은 벽돌로 지은 미술관을 따라 걷다 보면 길모퉁이에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고희동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15년 그가 그린 ‘부채를 든 자화상’은 한국 최초의 유화 작품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고희동 선생이 살았던 가옥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해 지은 목조 한옥이다. 이 집에서 학생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치면서 41년을 거주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당대 문화예술인과 교류한 공간이다.
한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다. 사랑방 옆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실을 따로 뒀다.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기 편하도록 긴 복도를 이어 창을 냈다. 한옥을 둘러싼 붉은 벽돌담과 푸른 철대문이 인상적이다. 개량 한옥은 일제강점기 한옥 살림집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예술가들의 터전, 옥인길
한옥과 양옥, 중국의 건축양식을 조합해 지은 옥인동 박노수 화백의 가옥.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옥인길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곳이다. 조선시대 중인과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세종대왕 생가터,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근대와 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같은 예술가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는 민족시인 윤동주 하숙집터가 있다. 1941년 당시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하숙집 근처 인왕산 자락을 거닐며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의 명작을 남겼다.
윤동주 하숙집터 근처 옥인동에 있는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 양옥, 중국 건축 양식이 조합된 화려한 집이다. 서양의 입식 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이 조합된 주택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다. 한국 화단의 거장 박노수 화백의 40년 동안의 삶과 작품세계가 주택과 정원 곳곳에 남아 있다. 1층 벽돌조 구조와 2층 목구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주택 현관의 바닥과 벽타일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소’의 화가 이중섭은 누상동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일생 최초의 개인전이던 미도파 화랑 전시회를 준비했다. 삶의 고뇌를 진솔하게 화폭에 담았던 이중섭은 이곳에서 ‘도원’ ‘길 떠나는 가족’ 등을 그렸다. 힘겨웠던 그의 삶처럼 누상동 가옥에 이르는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통인동에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도 남아 있다.
소극장이 모여 있는 혜화동 로터리길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된 혜화동 로터리 ‘마로니에 공원'.
예전에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했던 혜화동은 서울대 학생들과 주변의 대학생이 모이면서 대학로라는 개성 넘치는 거리로 변했다. 서울대는 1975년 관악산 아래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 1929년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됐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미술관과 크고 작은 공연장이 모여 있다. 공원 내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윤선도는 근처 이화동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귀양 생활을 했다. 시비에는 유배지에서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과 벗 삼았던 외로운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공원 옆에는 1931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지은 벽돌 건물이 있다. 광복 이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됐다. 아치 모양의 중앙현관이 있는 3층 건물에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1930년대 근대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난다.
역사적인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은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트남의 정치적 수도인 하노이에서 열립니다. 하노이는 수많은 외세와 투쟁하며 성장했습니다. 기나긴 식민지 기간을 견디며 끝내 독립을 쟁취한 베트남인의 자부심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하노이는 매력적인 관광지입니다. 유럽의 작은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건축물과 중국 혹은 일본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흔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1세기 리왕조 때 조성한 구시가지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 후에, 호이안은 하노이와는 결이 다른 떠오르는 관광지입니다. 세 도시 모두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어 한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낭은 매력적인 해변과 휴양이 있는 거점도시고 호이안은 빛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색의 등과 야경이 빼어납니다. 역사문화도시 후에는 베트남의 뿌리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힙니다.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베트남으로 이번 봄에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웅장하고 성스러운 성 요셉 성당하노이 노이바이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택시 안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오토바이가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수줍은 듯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랜 친구 같은 정(情)이 느껴진다. 하노이의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구시가지에 다다르자 논라(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앞뒤로는 채반 가득히 과일이 실려 있고, 여인은 주변 오토바이의 아찔한 움직임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은 채 걷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여기가 바로 베트남이다. 숙소에서 성 요셉 성당까지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1시간이 훌쩍 넘겨 도착했다. 거리를 걷다 유난히 사람들이 복작거리기 시작하더니 눈앞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성당이 확 다가왔다. 검게 그을린 성당의 외벽에는 도시의 오래된 기억들이 차분하게 쌓여 있는 듯하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1886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 요셉 성당은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00여 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거쳐 하노이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기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라도 하듯 오래되고 웅장한, 게다가 성스럽기까지 한 이 성당 주변으로는 예쁜 상점과 분위기 좋은 카페, 식당이 모여들었다.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이 오래된 건물은 외롭지 않겠다.성 요셉 성당에서 한참을 보내고 나니 방금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습한 공기가 몸에 감겨 왔다. 호안끼엠 호수다. 하노이를 대표하는 호안끼엠 호수는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오늘 하루는 어땠느냐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 호안끼엠 호수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모인다. 폭 200m, 길이 700m의 이 호수를 감싸고 있는 가로수를 따라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 벤치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숫가에 앉아 간식을 먹는 연인 그리고 친구와 놀러 나온 젊은이들. 구시가지의 복잡한 모습과 달리 조용하고 여유로운 하노이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붉은 조명으로 반짝이는 호안끼엠 호수의 테훅 다리호수를 걷다 보면 붉은 조명으로 반짝이는 테훅(The Huc)이라는 붉은색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연결된 이 다리를 건너면 1865년 지어진 응옥선 사당으로 갈 수 있다. 이 사당에서는 문, 무, 의 세 성인을 기린다. 학문의 신 반수옹, 13세기 몽골족을 무찌른 쩐흥다오 장군, 의학의 신이라는 라또를 모시고 있다. 사당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1968년 호안끼엠 호수에서 잡혔다는 몸무게 290㎏, 길이 2m의 거대한 거북이 박제가 전시되고 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사당을 나와 이곳을 등지자 인력거와 비슷한 씨클로가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운전자의 부름에 호기심이 발동한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다. 호객에 성공한 씨클로 한 대가 무리를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씨클로는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자연계의 다섯 요소로 만든 이름 다낭 오행산15세기까지 강성했던 참파 왕국의 거점이었던 다낭은 중부 최대 상업도시이자 베트남 제3의 도시다. 다낭은 도둑, 문맹자, 극빈자, 거지, 마약 소지자가 없다고 해서 예부터 ‘5무(五無)’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10년 전 베트남을 방문했던 이들은 다낭의 놀라운 변모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단지 도시의 외형만 변한 게 아니다. 해마다 1000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도시인 만큼 취향을 자극하는 다양한 관광 콘텐츠로 채워졌고 감성까지 더해졌다.다낭 시내에서 10여㎞ 떨어진 오행산. 오행산은 자연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에서 이름을 따왔다. 베트남어로 하면 목(Moc·木), 화(Hoa·火), 토(Tho·土), 낌(Kim·金), 수이(Thuy·水)다. 대리석이 많은 지형이어서 마블마운틴이라고도 불린다. 오행산 중 수산(水山)이 가장 크고 볼거리가 많다. 오행은 우주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며 오행을 거스르면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또한 유명한 서유기의 손오공(제천대성)이 석가여래와 법력으로 대결하다 져서 바위에 500년 동안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오행산은 다낭 시민에게 신앙의 땅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 관광객은 오행산 중 수산만 돌아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20분도 안 돼 정상에 도달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다낭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산비탈 아래에선 1825년 민망 황제가 방문했다는 영응사(靈應寺)와 베트남어로 후옌콩이라 불리는 현공(玄空)동굴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현공동굴은 일종의 석굴암이다. 작은 동굴 입구와 달리 동굴 내부에는 사천왕상은 물론 전각 형태의 법당에 불상까지 모셔져 있다.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관광지는 대리석이 많이 나서 ‘마블마운틴’이라 불리는 오행산이다. 산의 곳곳에는 린응사를 비롯해 사찰과 다양한 모습을 한 부처상이 세워져 있다. 린응사는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만나 인도로 떠난 자리에 생겨난 절이라고 한다. 오행산은 특히 암푸동굴을 비롯한 다양한 동굴이 볼거리다. 암푸동굴은 오행산의 입구 쪽에 있는데 천당과 지옥 사후재판소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다낭의 또 다른 명소는 바나힐 국립공원이다. 해발 2000m를 케이블카로 20분간 이동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호텔, 카페, 놀이동산(자유이용권 포함)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손 모양을 한 골든브리지는 매력적이다. 바나힐은 다낭시에서 서쪽으로 약 42㎞ 떨어져 있으며 베트남의 또 다른 관광지인 달랏과 다낭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다.빛의 거리, 매력적인 소도시 호이안베트남의 중부도시 호이안은 참파왕조부터 17세기까지 인도 일본 중국 이슬람을 아우른 베트남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인정돼 1999년 베트남에서는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호이안의 옛 거리(올드타운)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1953년 일본인이 세운 내원교다. 당시 일본과 교역이 잦아 일본인 마을이 있었는데, 목조 지붕의 다리인 내원교가 그때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다.세계적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는 거의 없어 가치가 높은 다리이기도 하다. 내원교 근처에 있는 쩐가사당은 1802년 중국인 후손인 응우옌 왕조의 관리에 의해 선조에게 참배를 올리는 주거지며 내부 장식은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유품도 같이 전시돼 있다.호이안은 다양한 색채로 기억되는 도시다. 낮에 본 신산한 느낌보다 호이안의 밤은 찬란하다. 카페와 강가에는 오색찬란한 빛들이 쏟아진다. 전통시장에는 다양한 모양의 등불이 켜져 있고, 각양각색의 등을 팔고 있었다. 빛은 일렁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결혼사진을 찍는 예비 신부의 모습이 빛을 받으니 봉숭아색으로 곱게 물든다.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친 응우옌 왕조의 왕궁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무너진 왕조의 왕궁은 비참하게 버려졌다. 한때 강성했던 왕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색은 바랬고, 프랑스군과 미군의 포격으로 대부분 건물이 사라졌다. 1993년 베트남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왕궁 근처에는 티엔무 사원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독재정권에 항의해 사이공에서 소신공양(분신자살)한 틱광둥 스님이 수행했던 절이다. 절 안에는 스님이 소신공양을 위해 사이공까지 타고 갔던 오스카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스님은 불로 사라졌지만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심장이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불타는 심장’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 심장은 프랑스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절에는 사진만 쓸쓸하게 붙어 있다.하노이·다낭·호이안=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 이상현 여행작가 skycbi@hankyung.com여행 정보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에는 세계적인 호텔 여러 곳이 있다. 국제회의 장소로 자주 활용된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호텔은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01년 설립됐다. 1세기 이상의 전통을 이어온 5성급 호텔로, 하노이 동부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있다. 총 7층 규모에 364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골프코스, 수영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영국의 영화감독 찰리 채플린,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과 그레이엄 그린, 미국의 영화배우 제인 폰다 등 예술가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정치인이 거쳐간 유서 깊은 호텔로 유명하다. 2017년 11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하노이를 방문하며 머물렀다.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에 대비한 방공호를 설치, 현재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의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 프랑스 자본과 베트남 정부의 합작으로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일본의 혼슈, 시코쿠, 규슈 사이에는 좁은 내해가 하나 있다. 세토 내해라는 이름의 이 좁은 바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사카, 후쿠오카, 오이타 등과 접한다. 그 사이에 아직 발길이 덜 닿은 보석 같은 여행지 히로시마현이 있다. 보통 원자폭탄 투하지라는 것부터 떠올리지만 알고 보면 고요한 자연과 우아한 미식의 여행지다. 지진이나 태풍의 영향을 덜 받는 편안한 고장으로도 기록돼 있다. 사슴과 사람이 함께 사는 섬, 시간이 멈춘 듯한 숲 테라피 로드, 횃불 축제가 열리는 무인도가 기다린다. 어디를 가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정원을 볼 수 있으며, 고요한 정원을 낀 우아한 레스토랑도 많다. 가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이곳이야말로 자연과 호흡하는 휴식의 고장이라는걸.눈 많은 히로시마의 진짜 비경 산단쿄 계곡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해 먼저 공항 바로 옆에 있는 정원 산케이엔에 들렀다. 히로시마 공항 부지를 조성하느라 산자락을 깎을 때 나온 돌로 만든 정원이다. 원시림이 우거진 숲과 계곡에 인공 폭포, 인공 호수, 각종 수목을 더했다고 한다. 계절마다 매화, 창포, 수국, 단풍이 눈을 어지럽히고, 연못에선 어른 팔뚝보다 큰 비단잉어가 노닌다. 겨울인데도 표면이 언 연못 아래로 비단잉어가 꼬리를 흔들며 지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눈이 한두 송이씩 떨어진다.“히로시마현은 일본 남쪽 혼슈 지방에 있어 따뜻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겨울에는 눈이 정말 많이 옵니다. 일본인도 잘 모르는 사실이어서 히로시마의 눈 내린 산이 아름답다고 하면 놀라고, 스키장이 좋다고 하면 눈이 동그래지죠.” 이번 여행 안내자인 조수희 앤트래블 대표가 설명했다. 그녀와 함께 히로시마 자연의 진짜 속살을 찾아 북서쪽 아키오타 마을로 향했다. 먼저 향한 곳은 16㎞ 길이의 계곡 산단쿄다. 보통 나룻배를 타고 둘러보는데, 배가 다니지 않는 겨울에는 설경이 볼거리다. 장화로 갈아 신고 다리를 조심스레 건너 발이 눈 속으로 푹푹 빠지는 산으로 진입했다. 겨울에도 푸른 나뭇잎들이 살아 있고 그 위로 소복이 눈이 내려앉았다.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숲과 달리 초록과 순백의 숲은 아이러니하게도 포근해 보인다. 차갑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목화솜 같은 폭신함이 연상돼 손을 뻗어 눈송이를 만져본다. 동행 중 누군가는 그 사이 작은 눈사람을 만들기까지 했다.산단쿄에서 서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는 오소라칸야마에는 작은 스키장이 있다. 마치 강원도의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스키장이다. 스키장 입구에서 눈사람이나 이글루 같은 집을 만드는 아이들도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놀이터인 설산이 산악인에겐 등반 코스기도 하다. 동행 중 산악 전문가는 그 산을 넘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다. 철저한 장비와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가이드를 동반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산악인다운 기상이 묻어났다.숲길 걷다 카약에 낮잠까지 ‘아키오타 테라피 로드’아키오타에는 이 밖에도 여러 산자락을 따라 ‘아키오타 테라피 로드’가 형성돼 있다. 원숭이가 살던 계곡 사루토비와 폭포수가 쏟아지는 류즈코가 인기 코스다. 류즈쿄는 봄에 다녀온 적이 있다. 2년간 전문 교육을 받은 삼림 테라피스트가 동행했는데, 출발 전 혈압을 잰 후 내려와서 비교해보자고 했다. 산에 올라 이끼도 만지고, 열매도 머금으며 걷다가 폭포수 앞에서 명상도 했다. 마지막에는 바람 솔솔 부는 길목에 해먹을 걸고 낮잠을 잤는데 어찌나 개운하던지! 내려와 혈압을 재보니 낮게 안정돼 있었다. “산에서 일정 시간 이상 걸으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건강의 소소한 비밀이 산행에 있는 거죠. 현대인들은 좀더 자주 산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이곳이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툇마루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머물도록 하기 위해 여름에는 카약을 띄우고, 가을에는 요가 수업도 연다고 그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사람과 사슴이 함께 사는 섬, 미야지마히로시마 남쪽으로 내려가면 자그마하게 웅크린 바다 세토 내해를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섬들 중 가장 유명한 건 미야지마(宮島)다. 섬에 도착해 배에서 내려 선착장을 빠져나가니 곳곳에 사슴들이 보인다. 몇몇은 사람을 탐색하듯 먼저 다가오기까지 한다.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살아온 덕에 이 야생 사슴들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관광객은 저마다 사슴 옆에서 함께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슴들 뒤로는 미야지마의 최대 명소 이쓰쿠시마 신사가 보인다. 6세기 후반 처음 건립됐는데, 13세기 무렵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페리 선이 섬으로 다가올 때부터 많은 사람이 선수의 갑판에 서서 신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찰 일주문 같은 역할을 하는 신사의 문인 도리이(鳥居)가 물 위에 서 있는 듯 보여서다. 신사 앞 해안가에 건축돼 밀물이 들어오면 부유한 듯 보이는 건데, 특히 만조 때 가장 극적인 장관을 이룬다.신사 내부를 둘러본 뒤 주변까지 굽어보기 위해 뒷산 미센으로 향했다. 로프웨이를 타고 해발 535m 높이에 오르니 눈발이 산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휘날린다. 뿌연 시야에 가려진 산 아래 풍경이 베일을 두른 듯 신비롭다. “가을에 오면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볼 수 있어요. 그 시기에는 여행자가 부쩍 늘어나죠. 하지만 발길이 드문 설산도 아름답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난 설산에 더 애정이 간다.무인도를 지키는 료칸에서 하룻밤, 센스이지마히로시마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동쪽의 항구마을 도모노우라에 들렀다. 19세기의 석조 등대가 지키는 오래된 항구 마을이다. 목조 건축물이 남아 있는 이 예스러운 마을에서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햐야오가 ‘벼랑 위의 포뇨’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곳 선착장에서는 둘레 5㎞의 작은 무인도 센스이지마로 배가 다닌다. “섬에 거주자는 없고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만 들어서 있어요. 관리 직원들이 저녁 배로 육지에 돌아가면 그야말로 여행자만 무인도에 남는 거죠.”섬마을 료칸은 식당부터 남달랐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로에 전복, 문어, 오징어, 새우, 생선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요리사가 손님들을 주방 앞으로 불러 모아 갓 잡은 갯가재를 구워주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둠을 밝혀줄 등불과 온기를 더하도록 덥힌 돌주머니를 건넸다. 료칸의 방에 들어갔을 때는 바깥바람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위쪽의 작은 창들은 문이 달려 있지 않고 바람이 통하는 형태였다. 서늘한 한기에 잠들 수 있을까 싶은 우려도 잠시, 깊은 잠을 잔 뒤 찾아온 아침에는 온몸이 이상하리만치 개운했다. 마치 야생의 벌판에서 잔 듯한 묘한 느낌이었달까. 어쩌면 창 너머로 전해오던 바람과 파도 소리 때문이었을지도.히로시마=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여행정보인천 공항에서 히로시마 공항으로 직항이 있다. 에어서울이 운항하며, 비행 시간은 약 1시간35분 걸린다. 시내에는 히로덴이라 불리는 전차를 비롯해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다닌다. 숲과 섬을 볼 수 있는 외곽은 대중교통이 없고 영어가 잘 안 통해 전문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현지 여행사 중에서 예약부터 현지 투어까지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는 앤트래블도쿄가 있다.미야지마는 JR미야지마구치 역 앞 ‘미야지마 페리 승선장’에서 페리선으로 10분이면 닿는다. 센스이지마는 도모노우라 선착장에서 작은 페리 선으로 5분 만에 닿는다. 센스이지마의 료칸 코코카라에는 장작으로 데우는 한증탕, 바닷물 목욕탕, 모래찜질 체험 등이 있다.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히로시마 여행정보는 일본정부관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루관광청이 2019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관광명소를 선정했다. 페루 국민도 즐겨찾는 국민 휴양지 ‘파라카스’, 세계 최고도 호수 ‘티티카카’, 세계 최장의 ‘곡타폭포’ 등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휴식은 물론 각종 액티비티를 즐기며 색다른 여행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세계인이 동경하는 여행지 페루로 인생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사막과 바다를 동시에 ‘파라카스’파라카스(Paracas)는 페루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고급 휴양지다. 수도 리마에서 300㎞가량 떨어진 이카(Ica)에 있는 파라카스는 바다와 사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고요한 사막 위에서 부드러운 모래 감촉을 느끼며 마주하는 아름다운 초저녁 노을과 별들로 반짝이는 밤 하늘 풍경은 파라카스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바다 생물의 보고로 불리는 바예스타섬에선 수백만 마리의 새와 홈볼트 펭귄, 바다사자 등 희귀한 동물들을 바로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최신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고급 리조트와 호텔에선 사막과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야외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다.파라카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이색 액티비티다. 특히 사막에서 즐기는 샌드 지프와 보드가 인기다. 4륜 구동 지프와 보드를 이용해 경사진 모래 언덕 위를 쏜살같이 내달리는 짜릿한 경험을 즐길 수 있다. 프라이빗 선착장을 갖춘 바예스타섬의 요트 투어도 인기다.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페루 남부도시 푸노(Puno)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는 색다른 여행 경험과 인생샷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호수로 불리는 티티카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810m에 있다. 현지 원주민 사이에선 우주의 탄생과 함께 태양의 신 ‘인티(Inti)’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티티카카 호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섬들을 비롯해 갈대로 만든 인공섬 우로스까지 85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인공섬 우로스에선 잉카문명이 깃든 현지 원주민의 생활상을 엿보고 각종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내려오는 잉카문명의 전통의식과 함께 원주민이 갈대를 이용해 만든 배를 타는 이색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타킬레섬의 수공예 직물 관람·체험 프로그램도 놓쳐선 안 되는 티티카카 여행의 필수 코스다.구름 위에 떠 있는 ‘곡타 폭포’페루 북부에 있는 곡타(Gocta) 폭포는 높이 771m의 세계에서 가장 긴 폭포로 유명하다. 폭포 안에는 오래전부터 인어가 살고 있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곡타 폭포가 있는 페루 북부는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상지이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남미 여행의 정수로 꼽힌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비경과 등골 오싹한 짜릿한 모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페루는 물론 남미 여행의 화룡점정 같은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곡타 폭포까지는 아마존 정글 지대를 지나는 트레킹 코스를 거쳐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서듯 정글 속을 걷다보면 어느새 폭포 물줄기가 만든 수중 안개로 덮인 아름다운 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수중 안개가 빚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이한 경험도 할 수 있다.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