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힘
[책마을] 15만 명에서 15억 명으로 영어는 어떻게 세계어 됐나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000개가 넘는다. 인터넷에서는 그중 1500개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정보의 70%는 영어로 돼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모국어 화자를 갖고 있는 언어는 중국어다. 하지만 영어를 ‘제2의 언어’나 ‘외국어’로 사용하는 화자를 합치면 중국어를 넘어선다.

《영어의 힘》은 사용자가 15만 명에 불과한 방언이었던 영어가 어떻게 15억 명이 사용하는 세계의 언어로 군림하게 됐는지를 추적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BBC방송국에서 30년 넘게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영어의 여정’ ‘영어의 모험’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쓴 책이어서 방대한 내용이지만 자료들이 탄탄하고 흐름도 매끄럽다.

499년 게르만 전사들이 영국으로 가져온 영어는 이후 라틴어에 치이고 프랑스어에 밀리는 수모를 겪는다. 상류층이 외면했고 심지어 영어로 된 성경은 이단 취급을 받기도 했다. 저자가 찾은 영어의 가장 주요한 생존전략은 ‘흡수력’이다. 영어 어휘의 절반 이상은 50여 개의 외국어에서 빌려왔다. 수입한 어휘를 잘 섞어내 ‘영어화’한 것이다. 단어는 새로운 개념과 사상, 물건을 가져왔다. 그 덕에 영어 사용자의 삶은 다채로워졌고 다른 언어들도 영어를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힘이었다. 미국에 먼저 당도한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영어가 어떻게 눌렀을까. 저자는 교역이나 약탈을 목적으로 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의 청교도는 ‘정착’을 위해 미국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살기 위해 낯선 상황을 묘사할 단어들이 더 필요했고 어휘는 더 풍요로워졌다는 것이다.

책은 잉글랜드부터 미국과 호주, 인도, 싱가포르에 이르는 지역을 다루고 시간으로는 1500년을 오간다. 영어의 변천과 발전 과정을 따라가며 세계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멜빈 브래그 지음, 김명숙, 문안나 옮김, 사이, 504쪽, 1만95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