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신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생명의 소중함
세계 여러 의대 해부학교실 가운데 대만 츠지 의대 해부학교실은 조금 특별하다. 죽음으로부터 삶을 탐구하는 ‘인문학’을 융합했기 때문이다. 츠지 의대에선 기증받은 시신을 ‘시신 스승’이라고 말한다. 기증받된 순간부터 보관, 해부를 거쳐 다시 봉합돼 화장될 때까지 시신 스승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몸으로 지식과 사랑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기 몸을 기증한 시신의 가족과도 수시로 만나 소통하며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시신에 대한 예의도 깍듯하다. 해부학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을 통해 생명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츠지 의대생들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 진짜 삶의 종착역임을 깨닫는다. 이런 문화 덕분에 1995년 이후 츠지 의대에 시신기증 서명을 한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 기증되는 시신이 한 해 700여 구에 불과한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츠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인 허한전이 쓴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은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다. 그가 진행한 열 번의 해부학 수업을 묶었다. 손 해부로 시작해 허파와 심장 등 가슴안을 거쳐 위와 장, 간, 쓸개 등 뱃속과 생식기관, 다리와 발, 얼굴과 뇌, 그리고 마지막 수업인 봉합까지다.

해부된 생체의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진 않는다. 삽화가 없는 데다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읽기엔 다소 복잡한 인체 구조와 낯선 장기 용어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의학적 편견이나 오해들을 일상과 엮어 하나씩 쉽게 풀어주는 데 있다. 반지를 약지에 끼우는 이유를 손가락폄근의 유무로 설명하고, 맹장수술이라 불리는 막창자꼬리 절개 수술을 설명하며 ‘퇴화기관이기에 떼어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일반적인 의견에 반기를 든다. 재미있고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인체 이야기들을 보물을 찾듯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다. (허한전 지음, 리추이칭 정리, 김성일 옮김, 시대의창, 264쪽, 1만6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