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 ‘고대 그리스 올림픽 원반선수’(기원후 140년, 대리석). 이탈리아 로마 국립박물관 소장.
조각상 ‘고대 그리스 올림픽 원반선수’(기원후 140년, 대리석). 이탈리아 로마 국립박물관 소장.
인간은 원시적인 동물에서 이성을 가진 지적인 동물로 스스로 변화시켰다. 찰스 다윈은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기원을 《종의 기원》(1859년)이란 저서에서 추적했다. 다윈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설정했다. 한 가지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뿐만 아니라 다른 유인원들, 다른 인종들, 다른 인간들, 심지어는 함께 살고 있는 부모나 형제자매와 경쟁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한 승리에서 찾았다. 불과 도구의 발견은 인간에게 다른 동물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우위를 선사했다.

그리스 문화의 핵심, ‘경쟁’

인간은 ‘적자생존(適者生存)’으로 만물의 영장이 됐다.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은 단순히 타인과의 대결만은 아니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30만 년 전부터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오늘날 유럽으로 이주(移住)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는 4만 년 전부터 유럽으로 이주해 당시 유럽에 자리를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유인원들과 경쟁했다. 인간은 적자생존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판단했다.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 자신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고향’을 떠나 낯선 장소로 이주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와 스위스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는 고대 그리스 사회와 서양 유럽의 정신을 ‘경쟁’으로 해석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쟁을 ‘거룩한 시도’라고 여겼다. 그들이 시작한 올림픽 경기를 비롯해 문화, 예술, 체육 분야를 발전시킨 핵심은 바로 경쟁이다. 인간을 끊임없이 인간답게 만든 문화와 문명의 유전자는 경쟁이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 핵심적인 가치는 모두 경쟁을 통해 만들어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경기를 다른 선수나 다른 도시와의 대결로 보지 않았다. 올림픽 경기는 종교적인 축제다. 이 경기는 신들과 그 지역의 영웅들을 기린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기량은 신에 대한 찬사다. 올림픽 경기는 스포츠는 물론 음악, 춤, 조각, 연극을 포함한 예술적인 경쟁을 포함한다.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수년 동안 수련하고 연습한다. 인간이 지닌 최선을 발굴하고 발휘하는 것은 신에 대한 최고의 헌신이다.

아레테

그리스인들은 인간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아레테(arete)’, 즉 ‘덕(德)’으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테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사물에도 아레테가 있다. 의자의 아레테도 있고, 새의 아레테도 있다. 의자의 아레테는 인간이 그 위에 앉아 편하고 효과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견고하고 편안해야 한다. 아레테는 무엇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고유한 아레테가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크라트(aristocrat)’란 영어단어는 흔히 ‘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숨겨진 본래 의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깨닫고 묵묵히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모두 아리스토크라트다. 한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기 위한 노력들, 즉 오랜 시간을 바쳐 정교하게 훈련하고 완벽한 기량을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은 거룩하다. 경쟁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를 가려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한 인간을 축하하기 위한 의례다.

아이아스는 경쟁을 통해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명예를 부여받지 못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경쟁이 있다. 하나는 다윈이 《종의 기원》 서문에 기록한 대로 ‘손톱과 발톱을 피로 물들일(red in tooth and claw)’ 만큼 잔인하게 경쟁 상대를 무너뜨려 파멸시키려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 시기 그리고 질투가 혼재돼 있어 ‘자기파괴적’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아레테’ 즉 신이 그에게 부여한 고유한 개성인 ‘덕’을 진작시키기 위한 숭고한 노력이다. 타인과의 경쟁은 자신이 지닌 덕의 최대치를 발견하는 데 효과적이다. 육상선수는 전국체전이나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훈련 스케줄을 맞춘다. 만일 이런 경기가 없다면 그 선수가 스스로 훈련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다.

고통의 시작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해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아이아스가 아니라 오디세우스를 최고의 영웅으로 인정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선사했다. 아이아스는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자신의 칼을 땅 위에 세워놓고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눌러 자살한다.

그 현장에 찾아온 아이아스의 아내 테크멧사는 통곡하며 합창대를 향해 말한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손에 그렇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땅속에 박혀 있는 칼이 말해주고 있어요. 그분은 그 위에 엎어지신 것입니다.”(906~907행)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이제 흙으로 돌아갈 시신이 됐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칼에 찔린 채, 검은 피를 콧구멍으로 뿜어내며 죽었다. 테크멧사는 이복동생 테우크로스와 함께 그를 들어올린다.

합창대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말한다. “가련한 분이며, 완고하신 분이여. 그대는 결국, 결국 무한한 고통의 슬픈 운명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마음이 사나워져 원한을 품고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을 밤낮으로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놓고 가장 용감한 전사들이 ‘경쟁’을 벌이던 그날 큰 고통이 시작됐습니다.”(925~936행)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끈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영웅시대의 오래된 가치를 상징한다. 그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명예를 얻으려 했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 필요한 아레테는 전쟁에서의 용맹성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를 통해 공동의 최선을 이끌어내는 ‘설득’이라고 판단했다. 왜 이들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아이아스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에게 줬는가?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나 아이아스가 지니지 못한 중요한 가치를 상징한다. 아킬레우스나 아이아스가 자신의 몸으로 명성을 얻고자 했다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언변으로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다.

아곤

테크멧사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아이아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비웃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을 비난하면서 결국 아이아스가 목숨을 스스로 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판단력이 부족한 자들은 좋은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잃어버릴 때까지 모르는 법입니다. 아이아스의 죽음은 내게 괴롭고 그대들에게는 달콤하겠지만, 이분 자신에게는 기쁜 일입니다. 바라던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964~968행)

숨겨진 최선을 이끌어내는 훈련…경쟁은 자기 자신과 하는 것
고대 그리스어에 모든 형태의 경쟁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아곤(agon)’이다. 아곤은 국가 간의 전쟁일 수도 있고 개인 간의 논쟁일 수도 있다. 철학적, 정치적, 법률적 논쟁이 모두 아곤이다. 아곤은 운동경기에서의 경쟁일 뿐만 아니라 드라마, 음악, 문학, 건축 그리고 학자들 간 선의의 경쟁도 지칭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분야에서 최선을 발휘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쟁을 통해 자신이 되고 싶은 ‘최선의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경쟁은 바로 자신의 숨겨진 최선을 이끌어내는 체계적인 훈련이다. 자신의 아레테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 경쟁이란 약육강식이며 적자생존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과 경쟁하지 않고 남들과 경쟁한 아이아스는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종결시켰다.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