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기차 제조회사인 테슬라는 2010년 상장했다. 미국에서 자동차 제조사의 상장은 1956년 포드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이었다. 중국에서는 퓨처모빌리티라는 회사가 전기차 브랜드 ‘바이톤’을 선보였다. 올해 양산을 시작하는 제품의 완성도는 유럽이나 일본 자동차에 못지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퓨처모빌리티는 창업한 지 불과 3년밖에 안 된 ‘새내기’다.

기존 자동차업계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탈(脫)가솔린, 탈디젤 물결이 진입 장벽을 무너뜨렸다. ‘엔진’ 대신 ‘모터’를 장착한 신규 참여자들이 가세했다. 수직 통합형이던 비즈니스 모델은 수평 분업형으로 바뀌고 있다. 소유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소비 풍토는 달라지고 있다. 《2022 누가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는가》는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엔 무엇이 있는지, ‘경쟁’을 넘어 ‘생존’을 위해 기업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고든다. 일본 릿쿄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여러 투자은행에서 근무하고 다양한 업종에서 컨설팅한 경험을 기반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책마을] 변혁의 시대 마주한 車산업…경쟁 아닌 생존이 화두로
자동차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은 제조 방식의 변화다. 저자는 “기획, 생산, 판매 등 전 과정을 계열사에서 책임지는 기존 자동차산업과 달리 차세대 자동차산업은 각 단계를 외부 업체에 맡긴다”며 “전기차는 계열 부품 공급자가 없어도 표준화된 부품을 조합만 하면 돼 제조 공정에서 숙련된 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이 결합하면서 자동차산업은 자동차뿐 아니라 정보기술(IT)과 전기·전자가 융합된 거대한 산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책은 이런 흐름 속에서 재편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세계지도를 보여준다.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미국 기술기업들의 도전과 역습을 노리며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GM과 포드의 움직임을 엿본다. 자동차산업의 발상지인 독일에서 경영개혁에 나선 다임러, 폭스바겐, BMW 등 3사의 전략과 자동차 ‘대국’에서 ‘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중국의 계획, 그리고 자율주행 기술의 배후에 있는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 인텔의 입지도 살펴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일본 자동차 시장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도요타와 소프트뱅크를 통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저자는 ‘일본 자동차의 자존심’ 도요타를 언급한 마지막 부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책을 통틀어 한국 자동차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도요타’ 대신 ‘현대차’를 넣어 읽게 된다. 기술 기업으로 자동차산업의 패권이 넘어가고 기존 제조사는 하드웨어 납품사로 전락할 가능성,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는 단기간에 수익을 높일 수 없다는 불안, 차세대 자동차산업에서는 현재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언급한 ‘도요타의 위기’는 곧 현대차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이기도 해서다.

저자는 온갖 고난에도 “도요타는 계속 승자로 남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근거로 가장 먼저 든 것은 수장이 위기를 인식하는 강도다. 도요다 사장은 오늘을 “자동차업계에 100년에 한 번 오는 대변혁의 시대”라 여기고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제조하는 ‘도요타 생산 방식’이 차세대 자동차산업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자동차 회사를 넘어 사람들의 다양한 이동을 돕는 회사’로의 열망도 뒷받침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와 경영철학은 자동차산업에 새롭게 뛰어든 기업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친환경에너지 생태계 구축, 구글은 원하는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스마트한 사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우버는 도시 디자인의 변혁이라는 기치 아래 자동차의 존재 의미를 묻고, 아마존은 말만 하면 이뤄지는 고객 중심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위기를 어느 정도 무게로 인식하고 있을까. 어떤 비전을 갖고 무엇을 하고 있나. 책의 감수를 맡은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말한다. “자동차산업은 더 이상 단순히 제조업의 범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강력한 IT를 기반으로 경쟁국을 앞서 나가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더 근본적인 미래형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와 대책이 필요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