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길, 우리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인문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4차 산업혁명은 어떤 것일까. 기대감을 갖고 협업의 결과물인 《4차 산업혁명,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과학기술정책연구원 편저)을 손에 들었다. 이제까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이 주로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이 책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4차 산업혁명의 길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이 혁명을 대하는 자세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19인이 쓴 글들은 실용의 문제보다는 당위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어떤 글은 인상적이지만 또 어떤 것들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책의 장점이다.

다만 인문학자들이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강한 편견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클라우스 슈밥도 몰랐던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라는 글을 기고한 한 인문학자 글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시장자본 증식을 위한 기술발전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결국 기술발전을 가능케 할 창의력도 진작시킬 수 없고 삶의 질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익을 위한 분투 과정에서 익명의 다수가 득을 보는 것이 시장 아닐까. 그런 인간의 노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시장에 대한 불호를 드러내는 글들이 의외로 많은데, 아무래도 인문학을 하다 보면 현실의 문제보다 당위의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시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가상현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이 책 내용 중 가장 실용적인 부분 중 하나다. 일반 사람들은 가상현실에서 더 매력적인 세계를 맛보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대해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하나는 현실 세계를 구분하고 내버려 두는 것, 다른 하나는 가상현실과 비슷하게 현실 세계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후자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실과 달리 갈등이나 분쟁을 경험할 필요가 없는 가상적 인간과 가상 세계에 더 강한 선호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국 이런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가상 인간을 개발하는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누릴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실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덜 할지 모른다. 저자는 “현실의 인간은 자신이 인정받고 지지받는 가상적 인간과의 관계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따라서 현실의 인간관계는 점차 흔들릴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2013년에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허(Her)’란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한 글들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시장이나 변화에 익숙지 않은 전문가들의 당위에 대한 논의는 구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공병호 < 공병호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