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을 잡고 버티는 게 '영원한 사랑'
문학평론, 에세이, 소설, 인문철학서, 평전 등 다양한 분야 책을 써온 시인 장석주(64·사진)가 오랜만에 본업인 시로 돌아왔다.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를 새로 냈다.

늘 뜨겁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온 그의 글쓰기가 이번 시집에선 20대 초반 청년의 일기 같은 작고 풋풋한 느낌을 담아냈다. 올해 등단 40년을 맞는 장 시인은 “이번 시집은 작다. 작아지려고 탕약처럼 뭉근한 불로 오래 졸였다. 작음은 이번 시집에서 내세울 단 하나의 자랑거리”라고 설명했다.

‘좋은 시절은 가고 간 것은 다시 오지 않아요’라 붙인 시집의 소제목처럼 사랑을 전체적인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마냥 풋풋하지만은 않다. 장 시인은 시 속에서 사랑이 죽음과 궤를 같이하며 무엇보다 넓고 깊다고 이야기한다. ‘버드나무속-손’에서 그는 ‘나는 살아도 살았다고 말 못한다’며 세상에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삶이란 건 없지만 그 끝을 알고 버티는 과정이 진짜 영원한 삶과 영원한 사랑임을 알게 해준다. ‘버드나무의 사생활’에선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마무리한다. 헤어짐과 울음을 초월한 둘의 하나 된 그림, 그렇게 ‘둘이 하나가 돼 돌다 원으로 사라지는’ 세상 이치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끝을 잡고 버티는 게 '영원한 사랑'
시집 말미엔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두 사람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시극 ‘손님-쌍절금 애사’을 넣었다. 저자는 ‘사랑’과 함께 세상엔 예상 불가능한, 언제든지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지뢰밭 같은 미래로 대변되는 ‘우연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시극 속에 등장하는 거사는 확신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이런 믿음은 당위로만 존재할 뿐이며 우연적으로 가동된다”며 “그의 시에 ‘점집’ ‘손금’ ‘운세’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의 시가 세계의 우연성과 그로 인한 결과를 향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