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탄생시킨 애덤 스미스는 ‘독점’을 그토록 싫어했다. 저서 《국부론》에서 그는 18세기 상공업자들이 정부 관료와 결탁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는 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 같은 독과점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었다. 미국 독립혁명도 독과점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혁명의 방아쇠였던 1773년 보스턴차(tea) 사건은 영국 정부가 동인도회사에 차를 독점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한 차 조례에 보스턴 시민들이 반발해 일으킨 소요였다. 독점을 혐오하는 정신은 미국 헌법에도 영향을 미쳤고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기틀이 됐다. 하지만 지금 미국 사회는 독점이 횡행하고 경쟁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널리스트인 조너선 테퍼가 독점에 의해 경쟁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쓴 《자본주의의 신화(The Myth of Capitalism》(윌리)가 미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저자는 “인류를 기아와 궁핍에서 건져내 번영과 부의 길로 이끈 자본주의는 경쟁을 그 원동력으로 한다”며 “지금 미국 산업에선 이런 경쟁이 잇달아 실종되고 있다”고 말한다.

각 지역에서 ‘맹주’ 역할을 하는 미국 항공사들은 지역 독점을 즐기고 있고, 두 개 기업이 미국 맥주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다섯 개 은행이 미국 금융 자산의 절반 이상을 통제하고, 미국 가구의 75% 이상이 한 회사가 서비스하는 인터넷을 사용한다. 두 개의 보험기업이 80~90%의 시장 점유율을 갖는다. 미국 소고기 시장도 네 개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금융과 정보기술(IT)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목할 만하다. 독점 금융자본으로 유명한 JP모간은 19세기 말 가장 큰 산업이었던 철도와 철강업을 지배했다. 이 산업의 자금 공급을 JP모간이 맡았다. 이후 국제금융계로 그 위세를 넓혀갔다. JP모간만이 아니다. 다른 대형 은행들도 지속적으로 독점을 유지했다. 2009~2013년 5년간 미국 내에 신규 설립된 은행은 7개에 불과했다.

[책마을]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니다
항공기 제조업이나 중소기업계, 금융서비스업 등에서 독점 기업이 나오는 이유도 비슷하다. 기업의 로비가 결국 규제와 면세 등 각종 혜택을 불러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1달러를 로비에 쓰면 과세 면제가 22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대표적 로비기업으로 제약업체들을 꼽는다. 제약기업은 882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다. 제네릭(복제)약품의 승인을 늦춰 달라고 한 분기에만 1000만달러를 썼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과 구글이 지난해 쓴 로비 자금은 공식적으로 5000만달러다.

실리콘밸리의 IT 자이언트들은 금융과 또 다른 구조다. 이들은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력을 확장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10년간 436개 기업을 인수했다. 2017년 한 해에만 기업 인수에 316억달러를 들였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소형 기업들은 그들의 사업을 이어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이런 거대 IT 기업들에 팔려 나가길 원한다. 이들 IT기업은 전통 경제학을 외면한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장을 키운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기존 기업들은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고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뒤뚱거리면서도 규제에 의존하고 로비 등으로 독점의 이윤을 챙기려 든다.

하지만 저자는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가격시스템이다. 경쟁은 시장에 공급과 수요를 견인하는 분명한 가격 시그널을 제시한다. 하지만 독점으로 인해 자본주의 핵심인 가격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쟁 없는 ‘독점 자본주의’가 40년간 자본주의 세계에서 두드러졌다고 그는 분석한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부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각종 규제를 만들거나 시장 독점을 용인하는 건 결국 정부다. 정부는 효율성 강조와 낮은 가격 등을 통해 독점의 효율성을 전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필요한 정부 역할은 ‘소비자 보호’보다 ‘경쟁을 살려 내는 일’이다. 기업 규모가 크다는 것은 결코 추한 것이 아니다. 많은 비즈니스는 ‘규모의 경제’에서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있다고 해서 독점을 형성·유지하라는 얘기는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책은 파괴적 혁신에 따른 독점적 이윤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독점이 가져오는 거래의 편익과 사회 잉여에 대한 고찰도 없어 아쉽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