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모나코는 사랑이다…그 남자의 모나코는 스릴이다
그 여자 : 사랑에 반하다, 모나코에 반하다

그레이스 켈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지중해의 보석, 모나코에 대한 여자의 첫인상은 ‘우아함’이었다. 사랑에 대해 뭘 좀 아는 30대에게 잘 어울리는 여행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그레이스 켈리’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바다를 마주하고 세워진 고급 호텔이나 항구에 정박된 수많은 요트가 30대 여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남녀 사이의 밀당에 약한 여자는 고도의 심리 게임인 연애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큐피드가 옆에 딱 붙어서 연애 코치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에 빠지곤 했지만 여러 번 사랑에 실패하면서 깨달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당찮다는 사실. 내 마음을 그냥, 척척 알아주는 운명적 사랑의 기적 따위는 바라기 힘들다는 사실.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모나코 대성당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모나코 대성당
다행히도 20대 후반이 돼 화려한 연애의 기술보다 노력과 진심을 먼저 볼 줄 아는 지금의 그 남자(남편)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한순간 불같은 사랑을 믿기보다는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신뢰와 노력이 있는 사랑이 더 가슴에 와 닿는 나이가 됐다.

필자가 조금 더 어렸다면 혹은 결혼 전이었다면 그레이스 켈리의 극적인 ‘신분 상승’에 초점을 맞춰 열광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부녀인 내가 그녀의 삶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리고 진심으로 모나코의 국모가 되기 위해 스스럼없이 국민에게 먼저 다가선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그리 대단치 않은 경력의 필자조차도 결혼과 함께 달라진 삶을 똑바로 마주 대하기 힘들었노라 고한다. 하물며 할리우드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그레이스 켈리가 아닌가? 단순히 지위나 환경의 변화를 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자아 정체성이 송두리째 움직인다는 것. 나는 이제 그것의 무게를 알 수 있다.

모나코는 크게 모나코빌, 라콘다민, 몬테카를로, 폰트빌레 등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모나코빌은 지중해에서부터 뻗어 있으며 돌이 많은 곶에 있는 구시가지이며, 라콘다민은 항구를 따라 위치한 구역, 몬테카를로는 주된 거주 지역이자 휴양으로 유명한 지역이고, 폰트빌레는 바다를 매립해 건설된 새로운 지역이다.

박물관보다 미술관에 가까운 해양박물관

여자는 모나코빌(Monaco Ville)로 향했다. 모나코빌로 오르는 절벽 아래에 주차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니 세기의 결혼식으로 떠들썩했던 모나코 대공궁과 대성당이 나타났다.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풍기는 대공궁의 내부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궁 주변을 맴돌았다.
고성처럼 해안절벽에 지어진 모나코 해양박물관
고성처럼 해안절벽에 지어진 모나코 해양박물관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깊고 푸른 지중해 덕분에 모나코 골목골목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마저도 깊고 푸른 낭만이 배어 있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절벽 끝에 세워진 모나코 해양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고성처럼 우뚝 세워진 건물에서 깊이가 있는 기품이 느껴졌다. 박물관이 1910년에 개관했다고 하니 100년이 넘은 셈이다. 평소 박물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내부가 궁금해졌다. 해양박물관 지하에는 아쿠아리움이 있고, 1층에는 심해어를 비롯해 해파리, 바닷가재, 갑오징어, 성게, 바다거북 등 다양한 해양생물의 표본이 있다. 2층에는 해양생물학자였던 모나코 대공 알베르 1세가 해양 연구에 사용했던 장비와 실험 기구, 기타 바다 관련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자연사박물관이나 해양박물관 등은 아이들에게 더 적합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여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전시 퀄리티가 상당했기 때문에.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나코 해양박물관은 외부도 내부도 아름다웠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 하지만 여자가 만난 모나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지금껏 그 어떤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성숙하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만큼 사랑과 삶의, 진득한 깊이를 아는 나이에 썩 잘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했다.

같은 ‘산동네’인데도 어쩜 이리 다를까. 우리나라의 산동네는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남미의 산동네인 과나후아토의 풍경에선 알록달록한 동심의 마음을 찾을 수 있었다. 톤 앤드 매너가 일정하게 잘 정돈된 모나코의 산동네에서는 우아한 멋이 느껴진다.

여자는 생각했다. 한 번에 풍덩 다이빙하듯 빠지기보다는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은근함이 있는 사랑, 불같이 뜨겁고 열정적이기보다는 오래도록 식지 않는 꾸준한 사랑, 신이 허락하는 사랑의 기적보다는 내가 직접 쌓아가는 신뢰와 믿음이 있는 능동적인 사랑. 이런 사랑들이 서른이 넘어서며 깨닫게 된, 여자가 추구하는 낭만이고, 사랑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첫사랑의 설렘보다 끝까지 지켜낸 사랑이 실재하는 모나코가 가장 현실적이고도 로맨틱한 사랑의 도시로 남았다.
정갈하고 우아한 매력의 모나코 도심은 겉모습과 달리 아찔한 긴장감과 역동적인 남성미가 넘치는 F1 그랑프리 오픈 서킷으로 유명하다.
정갈하고 우아한 매력의 모나코 도심은 겉모습과 달리 아찔한 긴장감과 역동적인 남성미가 넘치는 F1 그랑프리 오픈 서킷으로 유명하다.
그 남자 : 달리다, 심장이 터지는 순간까지

긴장감 느껴지는 F1 모나코 그랑프리

세상에서 경치 좋기로 유명한 서킷이자 가장 위험한 서킷으로 유명한 포뮬러 원(F1) 모나코 그랑프리는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라면 생애 꼭 한 번은 직접 가 보고 싶은 열망의 장소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서킷은 따로 ‘F1의 꽃’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아름답다. 남자, 그곳으로 향했다.

몬테카를로 서킷은 아름다운 경치로 ‘F1의 꽃’이라 불린다.
몬테카를로 서킷은 아름다운 경치로 ‘F1의 꽃’이라 불린다.
‘우웅~’ 시동을 걸자 무거운 엔진음이 차를 흔들고, 둔한 떨림에 심장 박동은 배가 된다. 그 남자, 출발을 알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3, 2, 1!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담아 있는 힘껏 액셀을 밟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좁고 위험한 급커브 도로가 날 맞이한다. 상상 속에서 수없이 달려 봤던 길, 별 어려움 없이 부드럽게 통과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해안 도로로 들어서자 진한 바다 내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탁 트인 전경을 배경으로 속도에 모든 것을 내건 사람들의 무한 질주가 열리는 곳, 이곳은 F1 모나코 그랑프리의 오픈 서킷이다.

많은 게이머와 자동차광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곳. 한창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던 시절 남자 또한 그랑 투리스모(Gran Turismo)라는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게임 속에서 선택한 자신의 차를 튜닝해 세계 유명 서킷을 돌며 F1 경주를 즐기는 형식이었는데, 이는 그 시절 스피드를 향한 불타는 남자의 로망을 실현해 주기에 충분했다.

모나코의 서킷은 도심 속에 있다. 그렇다 보니 경주가 열리는 기간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시내 도로를 경주용 도로로 전환한다. 다시 말해 F1 경주 기간 외에는 일반인들도 F1 서킷 위를 달릴 수 있다는 얘기. 오늘의 레이스에서 남자는 관중이 아니라 한 명의 레이서인 것이다.

007의 카지노 로얄이 촬영됐던 곳

층층이 들어선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거나 화려한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해변을 따라 달리고, 좁고 험한 헤어핀 커브를 아슬아슬하게 헤쳐나가는 이 서킷은 드라이빙의 실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스릴 넘치고 가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했으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매혹적인 카지노 중 하나인 몬테카를로의 그랑 카지노(Grand Casino)로 향해본다.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했다는 사전 지식과 화려한 벨 에포크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건축 지식 없이도 그랑 카지노의 위상과 아름다움은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독보적이다. 1865년에 지어졌으니 무려 140년 동안 이곳에서 그 당당함을 뽐내어 왔다. 007 시리즈의 시작, 007의 첫 번째 작품인 <카지노 로얄>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하니, 제임스 본드를 꿈꾸는 모든 남성에게는 어쩌면 꼭 들러봐야 할 필수 코스 같은 곳이리라.

입장료만 내면 일반인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랑 카지노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는 베팅액의 제한이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루에 몇천만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말씀. 이곳에서 굳이 운을 시험하고 싶지는 않다. 화려한 실내 장식과 각종 게임 기계에서 들여오는 명쾌한 소리만으로도 내 심장은 이미 충분히 고동친다.

카지노의 한쪽에 있는 정원으로 나가 보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지중해 바다와 그 바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그마한 모나코 공국이 내려다보인다. 연중 300일 이상이 맑음인 곳, F1의 굉음이 요동치는 곳, 세상의 모든 고급 요트가 정박해 있는 곳, 사나이 베팅의 매혹이 살아 숨 쉬는 이곳. 야망을 가진 이들이여, 그대 가슴 속에 봉인돼 있던 꿈을 모나코에서 해제하라!

모나코=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 그 남자(오재철), 그 여자(정민아) : 결혼과 동시에 414일간 신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인 그 남자와 웹 기획자 출신인 그 여자는 부부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한 지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동 저서로 《함께, 다시, 유럽》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