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湖 품은 시카고…깊어가는 밤, 뒷골목 바…'4박자 스윙' 재즈 선율에 빠지다
‘물과 바람’이 머무는 도시 시카고는 거대한 호수인 미시간호(Michigan L)를 품고 있다. 바다라 해도 믿을 정도의 미시간호는 북아메리카의 오대호 중 세 번째로 큰 호수다. 겨울철에는 북극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캐나다를 거쳐 미시간호를 통과하는데, 이때 많은 양의 수분을 머금은 바람이 시카고 지역에 눈을 내리게 한다. 반면 여름철에는 이 시원한 바람이 도심의 더위를 달래주기에 시카고는 윈디 시티(Windy City) 또는 ‘물과 바람의 도시’라는 애칭을 얻게 됐다. 도심을 거닐다 보면 고층 빌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미시간호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곧 겨울이 올 것을 귀띔이라도 해주는 듯이. 따뜻한 블랙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걸 보니 시카고는 지금 가을의 끝자락에 있다.

시카고=강서영 부사무장 sykang142f@flyasiana.com

거대한 빌딩 숲 현대 건축의 발상지

시카고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빌딩들은 높이도 높거니와 도시에 낮은 구름이 내려앉을 때면 마치 빌딩 숲이 구름에 잠겨 버린 듯한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흐린 날에는 ‘안개구름’이라 불리는 가장 낮은 구름인 ‘층운(層雲)’이, 화창한 날에는 뭉게뭉게 솟아올라 ‘뭉게구름’이라 불리는 ‘적운(積雲)’이 도시를 장식한다.
윌리스 타워 10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카고 시내.
윌리스 타워 10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카고 시내.
도심에는 개성 있는 외관으로 한껏 멋을 낸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곳저곳 여행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낼 만한 현대 건축물이 가득하다. 이렇듯 화려한 도심에도 아픈 역사가 존재했다. 1871년 시카고를 덮은 거대한 불길은 건물 3분의 1가량을 잿더미로 만들며, 도시 문화재와 예술품을 앗아가버렸다. 이후 시카고는 도시 복구와 재건에 힘쓰며 열에 약한 목재를 대신한 시멘트와 벽돌, 강철을 이용해 건물을 짓도록 법을 제정했다.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더 높고 현대적인 건물로 19세기 이후의 건축 발전에 힘을 불어넣었다.

시카고 도심 233번지에 있는 윌리스 타워(Willis Tower)는 존 행콕 센터(John Hancock Center)와 함께 시카고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외관은 여러 개 직사각형이 합쳐진 거대한 장난감 빌딩 같다. 윌리스 타워는 높이가 442m에 110층의 건물로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다. 윌리스 타워가 완공된 1973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기도 했다. 시카고 여행자라면 윌리스 타워의 103층 전망대에 올라볼 것을 추천한다. 전망대까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는데, 이때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모든 사람의 시선은 한곳에 집중된다. 바로 머리 위의 전광판이다. 1~3층을 나타내던 숫자는 서서히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고, 어느새 103층 전망대에 도착한다. 윌리스 타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103층 전망대에 있다. 사방 유리창을 통해 시카고의 전경을 파노라마뷰로 감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412.4m 상공에 설치된 유리 발코니 ‘레지(LEDGE)’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레지는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고 건물 외부로 돌출돼 있는 형태인데 이곳에 올라서면 발밑의 투명한 유리 아래로 숱한 건물이 펼쳐져 스릴이 넘친다.
재즈의 도시 시카고는 도시 전체에 풍류와 낭만이 흐른다.
재즈의 도시 시카고는 도시 전체에 풍류와 낭만이 흐른다.
윌리스 타워에 이어 시카고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은 존 행콕 센터다. 윌리스 타워가 시카고의 남쪽을 대표하고 있다면, 존 행콕 센터는 시카고의 북쪽에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윌리스 타워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존 행콕 센터가 시카고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높이 344m, 100층의 초고층 빌딩인 존 행콕 센터 또한 다양한 매력이 있다. 44층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이 수영장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된 실내 수영장이라고 한다. 94층의 전망대까지는 39초 만에 도달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미시간호의 해안선을, 남쪽으로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 구름 없는 화창한 날씨를 만나게 된다면 주변의 다른 주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거리의 작품들, 예술과 도심의 조화

시카고 도심은 화재 이후 철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됐다. 구역 분리도 빈틈이 없거니와 빌딩 숲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 옆을 거닐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마저 든다. 빌딩 앞에 설치된 거대한 조형물들과 공원 곳곳의 조각품은 또 어떠한가? 이렇게 시카고는 도심 곳곳에서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카고의 다양한 조형물을 자세히 둘러보기 위해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 Chicago)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밀레니엄 파크는 시카고 도심의 북쪽에 있는데, 분수를 비롯한 기념비적인 조형물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원 내 광장에는 야외 콘서트홀이 있고, 이곳에서 시카고 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과 연중 다양한 행사가 열려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 광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에 의해 더욱 특별하게 탄생됐다. 게리는 티타늄, 체인, 단풍나무 합판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 정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의 디자인을 추구해온 건축가다.
밀레니엄 파크 야외광장과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밀레니엄 파크 야외광장과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2003, Walt Disney Concert Hall)과 바로 이 밀레니엄 파크의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Jay Prizker Pavilion)이 그러하다. 무대를 둘러싼 강철 장식은 음악이 사방으로 퍼질 수 있도록 진취적인 느낌으로 디자인됐고, 광장은 철로 된 파이프로 뒤덮어놨다. 강인한 느낌을 주는 쇠파이프 재료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승화시켜놨는데, 광장 잔디에 앉으면 머리를 둘러싼 둥근 프레임이 아늑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일까, 공연이 열리지 않을 때도 많은 사람이 잔디 광장을 드나들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을 설계한 게리는 건축과 문화, 음악과 예술이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고 했다. ‘어떻게 공간을 사람들에게 친밀한 곳으로 만들까?’ 하는 그의 고민이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에 그대로 묻어나 있는 듯하다.
빌딩 숲에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
빌딩 숲에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
밀레니엄 파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다. 건축의 도시 시카고는 공원 분수마저 개성 있게 만들어놨다. 높이 약 16m의 직사각형 분수가 서로 마주하고 있고 물을 뿜어내는 동시에 영상이 함께 나온다. 이 분수를 만들 때 LED스크린을 함께 설치해 차별화했는데, 스크린에는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1000여 명의 시민 모습이 10여 분마다 바뀌어 나타난다. 이렇듯 시민이 주인공인 영상 분수는 시카고 시민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다. 여러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시카고의 다양성을 표현한 의미있는 작품이어서가 아닐까. 밀레니엄 파크의 가장 상징적인 조형물이라면 바로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일 것이다. 실버색 구름 모양 같기도 하고, 강낭콩 모양을 닮기도 한 이 조형물은 ‘콩(The Bean)’이라는 귀여운 별명이 있다. 110t에 달하는 클라우드 게이트는 옥외 조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한다. 클라우드 게이트를 통과해 조형물 중심에 서서 천장을 바라보면 아주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제자리에 서 있지만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마치 조형물 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넓은 공원 한가운데 가로 20m, 높이 10m의 클라우드 게이트는 꼭 거대한 거울이 세워져 있는 것만 같다.

재즈의 낭만이 깃든 풍류의 도시 시카고

시카고 도심의 재즈바.
시카고 도심의 재즈바.
다양한 매력이 있는 시카고는 별명도 많다. ‘바람의 도시’ ‘건축의 도시’ 그리고 ‘재즈의 도시’.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재즈의 도시가 시카고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얘기한다. 스카이라인과 높은 빌딩, 거리로 나온 미술 작품들이 도심을 장식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화려한 뭔가가 시카고에 존재한다. 바로 ‘재즈(jazz)’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심의 한적한 뒷골목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재즈 연주.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해본다. 서리 낀 유리창 너머 색소폰 연주를 까치발로 감상하다가 결국 바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야 만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겨보자. 시카고가 재즈 성지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이주해온 재즈 음악가들이 시카고에 터를 잡으면서다.

밀레니엄 파크 크라운 분수.
밀레니엄 파크 크라운 분수.
미국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도시 뉴올리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해군기지로 지정됐고, 이곳을 무대로 활동하던 음악가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후 그들은 북쪽을 따라 시카고와 세인트루이스, 캔자스 등으로 옮겨가 미국 전역에 재즈의 뿌리를 내렸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명연주자들이 시카고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시카고의 재즈는 꽃피기 시작했고, 백인 재즈 음악가들이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재즈를 배우게 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세련미가 더해져 비로소 ‘시카고 재즈’가 탄생됐다. 이렇듯 하나의 고유명사가 돼버린 시카고 재즈는 과거 뉴올리언스를 무대로 연주되던 재즈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악기마다 개성 넘치는 즉흥적인 연주로 화려함을 더하고, 강한 느낌의 비트를 좋아했다.

이에 비해 시카고 재즈는 기존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탈바꿈해 강약 있는 ‘스윙’을 연주하며, 트럼펫의 솔로 즉흥 연주나 노래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되 서로 화성을 이루는 서정적인 느낌의 재즈를 선보였다. 때로는 격정적이게, 때로는 부드럽게 재즈 음악은 우리의 인생을 연주하는 것일까? 깊어가는 밤, 시카고는 온통 재즈에 물들어버린다.

여행팁

아시아나항공은 인천~시카고 구간을 주 5회(화, 수, 목, 금, 일) 운항하고 있다. 인천~시카고 운항 스케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와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확인할 수 있다. 11월의 시카고는 평균 최저기온이 -0.2도, 평균 최고기온이 9도 정도로 낮 시간은 비교적 포근하지만, 아침과 저녁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외투를 준비하는 게 좋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Chicago O’Hare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시내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철로는 50분가량 걸리는데 이 전철은 외곽과 시내를 지상으로 이동하기에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도심에 다다를 수 있다. 택시를 이용하면 외곽과 시내를 잇는 도로를 달리며 병풍처럼 들어선 빌딩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