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湖洛)논쟁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8년간 편지로 주고받은 16세기 중후반 사단칠정논쟁, 효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의 상복 문제를 놓고 대립한 17세기 후반 예송논쟁과 함께 조선의 3대 논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논쟁이 길게 이어졌고 동원된 개념과 논리가 난해해서다.

[책마을] "聖人과 凡人, 마음은 같나"…조선 호락논쟁
《조선, 철학의 왕국》은 18세기 초반부터 한 세기가량 계속된 호락논쟁의 시작과 주제, 학파 형성과 복잡한 지형에 대해 파고든다. 한림과학원 부원장인 저자는 호락논쟁을 통해 18세기 변화의 흐름 속 조선의 사상과 이념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호락논쟁의 주역은 당시 학계 주류를 점했던 노론이었다. 충청도 노론학자들은 충청도의 다른 이름인 호서(湖西)를 따 호(湖), 서울 학자들은 낙(洛)으로 불렀다. 중국의 낙양(洛陽)이 수도의 보통명사처럼 쓰였기 때문이다.

호락논쟁의 뿌리는 송시열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시열의 제자인 충청도의 권상하와 서울의 김창엽이 각각 ‘호’ ‘락’을 대표했다. 두 정파는 미발(未發: 마음의 정체가 잘 갖춰진 상태) 때 마음의 본질, 인성과 물성의 같음, 성인과 범인의 마음 등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충청도와 서울이라는 지역 차이가 세 가지 주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로 나타난 측면도 컸다. 저자는 “지방은 변화가 더디고 보수적인 반면 서울은 문화와 변화에 빠르고 변화에도 열려 있었다”며 “변하는 국내외 상황에 대한 원칙론자와 수정론자 사이의 인식과 대응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고 서술한다. 현대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성리학의 관념과 원리를 쉽게 풀어 쓰려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이경구 지음, 푸른역사, 384쪽, 2만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