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판적 사고의 힘…인문학도, 실리콘밸리 취업문 뚫다
인문계열 전공자가 이공계 졸업생보다 심한 취업난을 겪으면서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때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경영자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도 ‘문송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학 전공의 엔지니어를 뽑으려는 기업들은 줄을 선 반면 스탠퍼드 출신이라도 인문학 전공자를 눈여겨보는 기업은 드물다.

《스탠퍼드 인문학 공부》는 어렵게 취업 관문을 통과한 스탠퍼드대 인문학 전공자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과정을 담았다. 그를 통해 정보가 넘쳐 나는 시대에 논리적인 추론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의 소통 능력 등 인문학 교육의 유용성을 보여준다.

저자도 인문학 전공자다. 스탠퍼드대에서 근대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새너제이주립대 경영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정보기술(IT) 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실리콘밸리엔 세계적인 IT 기업이 몰려 있다. 책은 그곳에서 일하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추적한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마리엘 무어는 맷슨 내비게이션 컴퍼니의 회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종교학을 전공한 마이클 크렌델은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이후 소프트웨어 회사인 라이트스케일의 공동 창업자가 됐다. 스탠퍼드에서 컴퓨터과학 분야의 한 과목을 이수한 것이 전부였던 그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의 일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조언한다.

취업 문을 통과하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제니퍼 오켈만은 299번의 입사 지원에 실패한 뒤 실리콘밸리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그랜가드는 졸업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선배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직의 관문을 넘어선 뒤 이들은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의 길을 걸었다. 철학 전공자인 바바라 브라운은 “스탠퍼드에 있을 때 나는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며 “이런 능력의 희소가치를 알 수 있는 곳은 대학 밖의 ‘현실 세계’”라고 말했다. 스탠퍼드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뒤 휴렛팩커드에서 일하는 게리 파지노는 “대학 시절 교수들은 대화, 독서, 글쓰기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사례를 들어 저자는 이들이 인문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전공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과 도전하는 태도, 쉬운 길에 대한 거부, 더 높은 곳에 가려는 추진력 등 개인들의 역량도 중요했다. 미국 대학연합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주의 93%는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학부 전공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 교육이 강조하는 것’이란 게 저자의 생각이다.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도 인문학 전공자들의 특징이다. 저자는 결국 졸업 이후의 일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지식을 얻기 위해 받은 훈련”이라고 강조한다. 전공 선택을 앞둔 수험생들뿐 아니라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