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톡] 이명옥 관장 "아트에 인문학·여행·과학 접목…'소확행 미술관' 만들겠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명예회장이자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젊은 시절 미술을 전공했지만 유난히 허우적댔다. 성신여대와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하면서도 대가가 될 재능이 없어 포기했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다시 예술기획을 공부한 뒤 미술사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6년 3월 서울 안국동에 사비나갤러리를 차렸다. 2003년에는 공공성이 강한 사비나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은근히 젠체하는 미술관의 높은 ‘문턱’을 없애고 영화관처럼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전시공간을 표방했다. 미술에 인문학과 수학, 과학, 패션, 일상 트렌드를 접목한 융복합 전시를 쏟아내며 관람객과 마주했다. 또 《팜므파탈》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그림 읽는 CEO》 《아침 미술관》 등 다양한 저술 활동과 기업 강연을 병행하면서 수많은 대중과 만났다.

그가 대중과 또 다른 만남을 시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22년의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새 건물을 완공해 재개관했다. 신축 미술관은 지상 5층, 연면적 1740.23㎡ 규모로 건립했다. 설계와 건축을 공간종합건축이 맡아 전시공간, 커피숍, 교육장, 학예실, 미술체험공간 등으로 꾸몄다. 삼각형 모양의 미술관은 내부를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공간 자체에서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을 살렸다.

5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관장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데 힘을 쏟았다면 이제는 ‘쉼과 앎의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며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이자 국제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화 톡톡] 이명옥 관장 "아트에 인문학·여행·과학 접목…'소확행 미술관' 만들겠다"
“세상이 팍팍하게 돌아가다 보니 사람들은 무엇보다 따뜻한 감성과 힐링, 작은 행복을 원하는 것 같아요. 난해한 현대미술의 가치를 좇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성취할 수 있는 ‘소확행 미술관’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는 2~3층 전시장은 미술에 첨단기술, 인문학, 수학, 과학, 디자인 등을 접목한 융복합전문 전시장으로 활용해 국제 미술계의 흐름을 보여줄 계획이다. 4층은 500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의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5층은 주로 실험적인 작가들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방침이다.

근처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고, 일대에 ‘천년고찰’ 진관사·은평역사한옥박물관·너나들이센터·셋이서문학관 등 문화시설이 있고,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장소도 이곳으로 결정돼 은근히 은평구의 문화 랜드마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미술관의 슬로건을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로 정한 이 관장은 “좋은 전시는 당연하고, 그밖에 또 다른 흥밋거리들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관람객들이 스마트한 여러 생각들을 혼합하고 각기 다른 감성을 교환해 이종교배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가 특정 분야의 지식을 많이 가진 ‘아는(knowing)’ 인재보다 다양한 지식들을 섞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생각하는(thinking)’ 인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명상, 여행, 혼밥 등과 같은 사회적 테마를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감성과 창의성 교육으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큰돈’을 들여 미술관을 새로 지었지만 이 관장의 머릿속엔 늘 한국미술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선 작가, 화상, 소장가, 전시공간(미술관·화랑)이 자동차의 네 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국공립 미술관들은 작가 육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상업화랑들도 그냥 경매회사에 치여 ‘뜨는’ 작가를 데려와 장사하는 수준이고요. 영국의 찰스 사치처럼 세계적인 컬렉터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그림 수집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풍토가 먼저 개선돼야 합니다.”

이 관장은 특히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동력인 작가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의 미술은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제적으로 훨씬 저평가받고 있습니다. 음악 무용 분야에는 조수미 백건우 강수진 등 쟁쟁한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미술 분야에는 백남준 빼고는 드물어요.” 문화계의 스타 만들기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국제적인 아티스트를 키우는 데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전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예술가의 명상법’전이 열리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