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히말라야 원정대와 셰르파, 처음부터 친구는 아니었다
지난달 14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을 포함한 한국인 5명이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주(駐)네팔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김 대장 등 한국인 5명은 해발 7193m의 산봉우리인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실종됐다. 그들은 지난달 13일 새벽(현지시간)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히말라야는 산에 있는 신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히말라야는 쉽게 인간에게 정상을 내주지 않는 산이다. 그나마 1910년이 돼서야 서구 원정대를 중심으로 히말라야 등반이 시작됐다. 이 같은 히말라야 등반 역사의 뒤엔 기록되지 않은 조력자인 ‘셰르파’가 있었다. 이번에도 한국 산악인 5명과 함께한 셰르파족 네팔인 가이드 4명 역시 등반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다. 모든 히말라야 등반은 외지인들인 원정대와 히말라야 거주민인 셰르파가 함께 이뤄낸 결과물이다.

미국 UCLA 인류학 교수인 셰리 B 오트너 교수가 쓴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은 그가 오랫동안 현지조사를 통해 연구한 네팔 소수민족인 셰르파족과 함께한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를 분석했다. 저자는 원정대와 셰르파, 두 문화의 만남을 ‘진지한 게임’이라고 분석한다. 매우 진지한 만남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게임처럼 두 참여자들에게 창조성, 진취성, 행위자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두 민족 간 게임은 처음엔 비대칭적 권력 관계 속에서 시작됐고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달랐다. 군사작전하듯 산을 오직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찾아온 서구 원정대는 셰르파를 통제하기 어렵고 규율이 안 잡혀, 엄한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한 순수한 존재로 바라봤다. 반면 셰르파는 자신들의 평등주의적 문화를 바탕으로 서구 등반가들을 ‘친다크’, 즉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자애로운 보호자로 생각했다. 셰르파는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반하기 위한 루트를 짜고 물품을 운반하고 요리와 청소 같은 궂은일을 도맡으며 심부름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대칭적 위계가 수반된 만남 속에서 점차 셰르파들은 서구 등반대와 부딪치게 된다. 문명화된 서구가 비문명화된 다른 민족을 발전시킨다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셰르파들은 스스로 게임의 룰을 바꿔 더 나은 보수와 장비, 더 많은 존중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끝에 조력자에서 나아가 ‘등반대원’으로서 자격을 획득한다. 단순히 서구 등반대의 권력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권력을 조정하고 조건을 개선하며 결국 이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히말라야는 이제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장을 넘어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 등반대와 여행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관광지가 됐다. 기술과 장비, 마케팅이 화려해졌다. 저자는 100년간 이어져온 두 집단 간의 만남이 최근 이 같은 상업성으로 인해 다시 셰르파에 대한 폄하와 종속,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