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뱅크시 '풍선과 소녀'
영국 출신 미술가 뱅크시는 벽이나 화면에 낙서처럼 긁적이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정치 사회적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예술의 형식성과 허영심을 비판해온 그는 한 번도 마스크를 벗고 대중 앞에 나타난 적이 없어 ‘얼굴 없는 아티스트’로 불린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그는 최근 영국 런던의 소더비경매장에서 현대미술 시장의 거래 관행을 조롱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자신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104만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미리 설치한 파쇄기로 그림의 절반을 파손해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예술이 시장의 부속품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메시지였다.

‘풍선과 소녀’는 원래 2002년 런던 쇼디치 근교의 그레이트 이스턴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 담벼락에 그려졌다. 2014년 지워졌지만 지난해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회화로 복원된 이 작품은 소녀가 하트 모양의 빨간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최근 뱅크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점을 들어 구원을 요청하는 시리아 난민 소녀의 회화 버전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뱅크시가 시리아 난민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그림으로 일깨웠다는 얘기다. 프랑스 파리 미술품 경매회사 아트큐리얼은 24일 동화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를 소재로 한 뱅크시의 또 다른 작품 ‘검문검색’을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