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일까.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수출국이고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회사도 있다. 어디든 모바일 통신망이 깔려 있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쓴다. 그렇다면 다음 목록을 보자. 1위 엔비디아(미국), 2위 넷플릭스(미국), 3위 브로드컴(싱가포르), 4위 텐센트(중국), 5위 페이스북(미국), 6위 소니(일본), 7위 키엔스(일본), 8위 아마존(미국), 9위 어도비시스템스(미국), 10위 구이저우 마오타이(중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매년 발표하는 ‘가치창조기업’ 순위다. 세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의 매출과 이익, 주가 상승과 배당 등의 지표를 종합해 평가한다. 주류회사인 구이저우 마오타이를 빼면 모두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다.

[책마을] 2040년, AI가 인류보다 똑똑해지는 '특이점' 온다
다시 한번, 한국은 IT 강국인가. 신간 《4차 산업혁명 6개의 미래지도》를 낸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컨설턴트들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것도 “한국은 IT 강국이 아닌 지 한참 됐다”고 한다. 새로운 혁신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다 기존 기업의 혁신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어서다. 저자들은 “기업들이 차세대 핵심 기술을 기존 사업에 접목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매우 늦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미래지도’를 꺼내든 이유다. 제목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는 강(强)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음성인식 플랫폼과 블록체인, 가상·증강·융합현실, 그리고 애드테크다. 대부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자동 연관어로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기술이 훨씬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만 해도 그렇다. 인공지능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 무렵이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흐른 현재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약(弱)인공지능과 달리 강인공지능은 학습능력을 갖추고 자율적으로 판단한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처럼 스스로 계속 발전해가는 것이 강인공지능의 핵심이다. 책은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는 ‘단위 면적당 컴퓨팅 파워’의 성장 덕에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2040년이 되면 인공지능 하나가 가진 지력이 인류 전체의 지력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올 것이라는 예측을 소개한다. 불과 20여 년 뒤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바꿔놓을 일상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공용 자율주행차로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고 교통 정체가 감소한다. 교통사고가 줄어들고 주차 공간이던 부동산 및 에너지 자원의 효율은 높아진다. 대중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은 본격적인 자율주행 기술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보고 있다.

의료기술 발달로 매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년 이상 늘어나는 현상도 직시해야 한다. 저자들은 “현재 50세 미만이라면 130세 이상까지 살 확률이 높고 30세 아래면 수명탈출속도(longevity escape velocity)에 올라타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사고사하지 않는 이상 육체적 존재의 시간적 연장이 영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력을 넘어서고 죽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노동의 종류와 질에 따라 소득이 정해지지 않으니 개인 간 소득 차등의 근거가 사라진다. 기본소득이 보편화되고 다수의 보통 사람은 적당히 인생을 즐기면서 취미로 일을 한다. 물리적 현실보다 가상 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극소수의 ‘슈퍼 휴먼’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런 미래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하지만 저자들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지금과 어떻게 달라지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은 우리의 생활과 삶을 급격하게 바꿔놓는다.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내놓은 2007년 이후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오늘의 일상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새로운 기술은 상식이자 변화하는 시대를 살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정보”라는 책 속 대목이 절실히 와 닿는다. 책이 현황 분석과 방향 예측에만 치우친 부분은 아쉽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 제시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기업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 국가가 기술의 흐름을 파악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을 짚어줬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