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고난과 아픔을 불러들이는 시인의 심사가 드러난다. ‘녹슬고 싶지 않은 생’이란 무엇일까.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무엇인가 성취를 위해 도전하고자 하는 생이 아닐까. 맞아야만 일어설 수 있고 더 세게 맞아야만 ‘속도의 미덕’을 가질 수 있는 팽이를 통해 활력 넘치는 삶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얼굴은 비밀스러워요. 오늘 하루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주름지고 있는지를, 어떤 생의 풍경이 시시로 바뀌고 있는지를, 우리는 거울을 마주볼 때 알게 되는데. 사람의 얼굴은 구겨진 감정으로 온전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거울 너머 수심이 가득 차 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그런 늙어가는 얼굴 풍경을 마주하면 조금 부끄러운 하루도 있으려나요. 울퉁불퉁한 어른의 감정들. 아침에는 요철 없는 매끈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깨어나 이 하루를 온전하게 잘 살아내었으면 좋겠습니다.김민율 < 시인(2015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
평소에 혼자서도 잘 다니는 편입니다. 혼자 서점에 가고, 카페에 가고, 공원에 가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정말 소중한 것은 혼자서 가질 수 없습니다. 둘 사이에서만 아는 특별한 추억, 내밀하게 속삭이는 언어들 같은 것 말입니다. 누군가와 함께이기에 비로소 소중하고 특별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 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가끔 우리에게 그렇게 찾아옵니다.주민현 < 시인(2017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가을장마가 지나가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십층아파트까지 올라옵니다. 여름과 함께 사라진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폭염에 그슬린 자리는 아직도 새까맣게 빛납니다. 용서해야 할 일들과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가을입니다. 발밑이 시립니다. 생각을 켜놓고 오래 선 나무들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습니다. 봄도 여름도 없이 가을이 오면 좋겠지만, 가을은 그림자 가진 것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계절이라 믿습니다.이소연 < 시인(2014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