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부가 큰 그림 그려야 성장? '빅 푸시'는 낡은 경제학
영국의 아서 루이스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유일한 흑인이다. 평화상을 제외한 학문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첫 흑인(1979년 수상)이기도 하다. 니알 키시타이니 런던정치경제대학 연구교수가 쓴 《경제학의 모험》에서 ‘개발 경제학’이란 분야를 개척한 그의 이론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은 루이스를 포함한 여러 경제 사상가의 만남을 주선한다.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앨프리드 마셜, 프리드리히 리스트 등 경제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 따라간다. 단순히 이론을 딱딱하게 서술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오늘의 경제 현상에 접목되는 지점과 한계, 그리고 왜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루이스는 농촌의 값싼 노동력이 도시로 와 일하게 되면 그만큼 생산이 늘어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개발 경제학자들은 장기 계획을 짜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빅 푸시(big push)’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시도한 아프리카 가나는 실패했다. 정부가 나서서 발전소와 병원, 학교와 항만을 건설했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회사가 많았다. 망고 가공공장을 세웠지만 먹을 망고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거나 대규모 유리공장을 지었지만 소비가 그에 못 따라가는 식이었다. 공장의 효율을 높이려 하기보다 뇌물로 정부 관리를 포섭하는 데 더 공을 들이는 정경유착 문제도 불거졌다. 또 다른 아프리카 나라 콩고민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한 나라도 있다. 저자는 개발 경제학을 기반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나라로 한국을 들었다. “정부가 나서서 새로운 산업이 타성에 젖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을 한국이 차별화가 가능했던 지점으로 짚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1980년대 이후 여러 경제학자는 빅 푸시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부가 필요할 때 누르면 경제가 도약하는 편리한 점화장치는 없다는 것을 이제 경제학자들은 알고 있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경제학의 중심을 이루는 이론들의 핵심을 뽑아내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낸다. 제국주의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존 홉슨, 불완전경쟁 개념을 창안한 조앤 로빈슨, 종속이론을 주창한 안드레 군더 프랑크, 공격적 투기 이론을 선보인 모리스 옵스펠드 등 다양한 경제학자가 내놓은 유용한 개념과 이론을 접할 기회다. 책 제일 앞쪽엔 장별로 ‘이 책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을 연대기 표로 정리해놓아 그들이 활약했던 시기와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