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마셔온 커피 한 잔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알고보면 쓸데있는 커피 잡학사전(알쓸커잡). 그동안 연재된 내용을 주제별로 나눠 추석 연휴기간 전해 드립니다.

◆ 홍콩 커피 여행
홍콩의 '후추 라테', 신세계를 맛보다


[알쓸커잡] 연유커피 후추라테…아시아의 커피 문화

홍콩. 나라 이름 중 유일하게 ‘ㅇ’ 받침이 연속되기 때문일까. 소리 내어 발음할 때마다 머릿속 묘한 울림이 한참이나 계속됩니다. 그 뜻마저도 향기로운(香) 항구(港). 어릴 때 자주 봤던 영화 때문인지 홍콩을 떠올리면 아련한 감정들이 스쳐 가지요. 이름의 유래에도 여러 설이 있지만 여자 해적 ‘향고(香姑)’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전에 홍콩에서 주말을 보냈습니다. 금융과 미식, 쇼핑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시대를 주름잡던 낡은 영화 속 장면들. 아직도 이쑤시개와 맘보춤과 흰 러닝셔츠, 혹은 선글라스와 청재킷과 담배가 먼저 생각납니다. 그 을씨년스럽던 도시 풍경과 통조림들, 자주 흥얼거리게 된 음악까지. 이번 여정에는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커피입니다.

차 문화가 발달한 홍콩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4~5년 전까지는 확실히 홍콩에서 맛있는 커피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차의 도시 홍콩을 커피의 도시로 바꿔가고 있는 건 홍콩 젊은이들. 몇 년 전부터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20~30대 사이에서 번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더 커피 아카데믹스, 커핑 룸, 싱글오리진 커피 바, 노크박스, 18그램스, 로프텐, 카페 데드엔드 등 홍콩섬과 주룽섬을 오가며 커피투어만 해도 며칠을 보내야 할 정도니까요. 호주의 유명 카페 브루브로스, 뉴질랜드의 퓨얼 에스프레소 등도 라인업에 들어 있습니다.

홍콩 카페들은 각각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냅니다. 150년간 영국 식민지를 겪으면서도 그들의 전통과 유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홍콩인의 힘이 커피에서도 느껴졌습니다. 골목골목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매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결승 진출자를 배출하고 있는 커핑룸, 장미향 나는 로즈라테를 내놓는 로프텐, 현지인들의 아지트가 된 데드엔드까지….

만약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더 커피 아카데믹스입니다. 이곳에선 그동안 마신 라테가 라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굵게 갈린 후추가 아가베 시럽과 조화를 이루는 ‘아가베’, 코코넛과 버터가 풍미를 더하는 ‘자바’, 뉴질랜드 마누카 꿀이 들어간 ‘마누카’, 오키나와산 사탕수수를 더한 ‘오키나와’. 특히 아가베에 있는 후추는 톡톡 터뜨려 씹을 때마다 커피와 아가베 시럽의 향미를 뚫고 나오는 ‘후추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로스팅룸까지 한눈에 보려면 코즈웨이베이 시그니처점을, 낡은 골목 속 조용한 휴식을 원한다면 완차이점을 들러보시길.

◆ 일본 나고야 커피
나고야를 '카페 왕국' 만든 건 도요타


[알쓸커잡] 연유커피 후추라테…아시아의 커피 문화

“나고야 가면 뭐 먹어야 해?”

언젠가 일본 나고야에서 온 일본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빨간 된장이랑 커피, 그거면 돼.”

그 흔한 된장과 커피라니. 나고야 출신이라기에 예의상 물어본 질문이기도 했지만 그토록 성의없는 답이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얼마나 보여줄 게 없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 뒤 몇 차례 일본을 갔지만 나고야는 항상 빼놓았습니다. 도쿄, 오사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도시로 꼽히는 나고야. 하지만 한국 여행객들에겐 ‘매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지난 성탄절을 나고야에서 보냈습니다. 중북부 산간 지역 여행을 위해 교통의 중심인 나고야를 택했습니다. 도심에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스타벅스나 도토루커피 등 다른 일본 도시에서 흔히 보던 카페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갑자기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고야의 명물’이라는 고메다커피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한 잔에 400엔 전후, 우리돈 약 4000원의 커피 메뉴가 많았습니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곧 따뜻한 물수건, 얼음물 그리고 큰 접시 하나가 나왔습니다. 잠시 후, 눈 앞에 갓구운 토스트빵과 버터, 단팥잼, 삶은 계란까지 차려졌습니다.

“저…, 이런 거 안 시켰는데요.” 서툰 일본어와 손짓으로 X자를 그리고 있는데 종업원이 웃으며 옆 테이블을 가리킵니다. 모두 빵과 계란, 커피를 함께 즐기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나고야의 독특한 모닝 커피 문화랍니다. 오전 8시부터 10시30분까지는 커피 한 잔 시키면 빵과 계란, 수제 잼 등이 함께 나온다고 하더군요. 커피와 함께 우동이나 초밥을 내주는 곳도 있고, 하루 종일 모닝 메뉴를 파는 곳도 있답니다. 작은 반찬 하나도 돈을 받는 일본인데, 나고야에는 왜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요.

나고야 사람들은 대부분 도요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나고야에는 도요타를 중심으로 부라더공업, 노리다케도자기, 린나이 등 굴지의 기업들이 많습니다. ‘부자 도시’ 이미지 때문에 ‘도요타시 나고야국’이라는 별칭까지 있을 정도지요.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아침에 차를 세우고 간단히 식사와 커피를 즐기면서 모닝 커피 문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나고야는 카페왕국입니다. 전체 음식점 중 카페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 배입니다. 막부 시대의 향수가 남아 있어 ‘다방 문화’를 즐기려는 중장년층이 많은 것도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나고야의 카페 대부분에선 여전히 흡연도 가능합니다. 나고야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스타벅스나 다른 브랜드가 쉽게 발을 못 붙인다는 말도 설득력 있습니다. 우리에겐 전범이자, 그들에겐 영웅으로 불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등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라는군요.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커피 맛이 유독 쓰게 느껴졌습니다.

◆ 베트남 커피 '카페 쓰어 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커피에 연유를 탈까


[알쓸커잡] 연유커피 후추라테…아시아의 커피 문화

베트남에서 마시는 연유커피 ‘카페 쓰어 다(ca phe sua da·사진)’ 들어 보셨나요.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쓰디쓴 커피입니다.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베트남 커피는 쌀국수집 후식으로 한두 번 접해본 게 다였는데요. 휴가를 이용해 베트남 중부 지역을 다녀온 뒤 왜 연유커피가 ‘국민커피’가 됐는지 알게 됐습니다. 36도의 높은 기온, 5분만 걸어도 옷이 흠뻑 젖어버리는 상황에서 마시는 ‘달콤쌉쌀’한 카페 쓰어 다는 세포를 깨우는 마법 같은 한 잔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생활력 강한 베트남 사람들의 힘이 이 커피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니까요.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은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입니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를 훨씬 앞서는 커피 대국이지요.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1857년, 프랑스 사제가 커피를 처음 들여왔습니다. 지금은 커피 재배 인구만 100만 명을 훨씬 넘지요. 전 세계에서 베트남처럼 빠른 속도로 커피 농업이 발전한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로부스타 품종이 80%라,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아라비카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커피시장을 장악한 커피믹스에 베트남산 로부스타종이 많이 쓰이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베트남 커피 수입량은 한해 2억~3억t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의 커피 문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커피에 연유를 섞었을까요. 19세기엔 신선한 우유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랍니다. 적은 양의 우유를 설탕과 끓여 만든 연유는 유통기한이 1년 정도로 깁니다. 100여 년이 지나며 베트남 커피 문화는 독창적이고, 소박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연유커피 외에도 코코넛밀크 스무디를 올려주는 코코넛 커피 ‘카페 두아(ca phe dua)’, 에그 커피와 소금 커피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커피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원액만 나오는 ‘카페 다(ca phe da)’를 주문하면 되지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는 ‘하이랜드커피’, 공산국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콩카페’ 등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커피 가격도 1000~2500원 선. 커피만큼은 식민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베트남에선 글로벌 회사들도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호주 글로리아진스는 진출 10년 만에 철수했고, 스타벅스도 2013년부터 지금까지 호찌민과 하노이에 30여 개 지점을 여는 데 그쳤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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