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암 진단을 받으면 죽음을 떠올렸다. 금전적 고민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건강보험 혜택이 늘면서 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유방암은 절제를 안 하거나 절제 수술과 동시에 재건 수술을 받는 환자가 85% 정도다. 유방암 환자라도 85%는 가슴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젊은층 유방암 발병 많아… 콩 섭취·꾸준한 운동으로 예방을"
백남선 이대여성암병원장(사진)은 “암에 걸렸다고 해서 죽음을 떠올리던 시대는 지났다”며 “암을 경험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그만큼 생존율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평균 수명인 87세까지 살면 세 명 중 한 명이, 남성 평균 수명 79세까지 살면 다섯 명 중 두 명이 암에 걸린다”며 “하지만 1990년대 초반 40% 정도이던 5년 생존율은 70%까지 높아졌다”고 했다. 국내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1%, 10년 생존율은 84%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백 병원장은 국내 처음으로 유방암 환자의 유방보존수술을 시행한 의사다. 2006년 영국 국제인명협회(IBC)가 선정한 세계 유방암 및 위암 분야 100대 의사에 뽑히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원자력병원장, 건국대병원장을 지낸 그는 2011년부터 이대여성암병원장을 맡고 있다. 1986년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하던 그가 국내 처음으로 유방을 살리는 보존수술을 한다고 하자 주변 의사들은 모두 말렸다. 유방에 암이 생기면 유방은 물론 겨드랑이까지 절제 수술을 하던 때다. 조직을 살리면 암 재발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마다 암 수술을 앞두고 절망하는 환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좋은 방사선 치료기기를 갖춘 원자력병원의 환경도 도움이 됐다. 백 병원장은 “수술 결과를 보니 유방을 다 도려내는 것과 보존하는 수술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며 “대신 수술 받는 여성이 느끼는 삶의 질은 보존수술이 비교할 수조차 없이 높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유방을 살리는 수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유방을 보존하지 못할 정도로 암이 퍼진 환자는 유방을 절제하면서 동시에 실리콘을 넣어 재건하는 동시재건수술을 한다. 백 병원장의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 학회에서 러브콜이 잇따른다. 강의를 위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쌓은 비행기 마일리지만 200만 마일이 넘는다. 백 병원장은 “러시아 몽골 등 60개 나라에서 연인원 4000명 정도가 찾아와 수술 받고 간다”고 했다. 병원은 환자 편의를 위해 수술 당일 한 번의 방사선 치료로 끝낼 수 있는 치료기(IORT)도 도입할 계획이다. 백 병원장에게 유방암의 원인과 증상, 수술·예방법 등을 알아봤다.

▷유방암의 위험 요인은.

“미국 유럽 등 서양은 60대 후반~70대 유방암 환자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40대 후반~50대 초반 환자가 많아 환자 연령층이 서양보다 10년 정도 젊다. 최근에는 20대, 30대 젊은 여성 유방암 환자도 늘었다. 유방암도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위험 요인은 일부 확인됐다. 모든 암의 첫 번째 원인은 고지방·고칼로리 식습관, 흡연, 스트레스, 공해, 운동 부족 등이다. 식습관을 바꾸거나 담배만 끊어도 암 위험을 30% 낮출 수 있다. 유방암은 모유 수유 기간이 짧은 것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늦게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아 모유 수유 기간이 짧으면 암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예방에 도움이 되는 습관은 어떤 것인가.

“콩은 유방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유방암 환자 70~80%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다. 유방암 발생에 여성 호르몬이 많은 영향을 준다. 여성 호르몬이 많으면 암이 잘 생기고 암 크기도 커진다. 하지만 식물에 들어있는 여성 호르몬은 반대 역할을 한다. 식물성 여성 호르몬은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고 유방암 예방 및 치료효과가 있다. 음식을 조리할 때 동물성 기름보다는 올리브유나 들기름 등 식물성 기름으로 조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1주일에 땀이 나게 300분(5시간) 이상 운동을 하면 에스트로겐 분비는 18.9%, 프로게스테론은 23.7%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모유 수유 기간도 영향을 준다. 이론적으로 36개월 이상 모유 수유를 하면 유방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돼 있다.”

▷유방암 의심 증상에는 어떤 것이 있나.

“초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유방암이 진행되면 유방 멍울 증상을 호소한다. 통증 없이 단단하고 까슬까슬한 덩어리가 만져지는 환자가 많다. 유두로 핏빛이나 점액 같은 분비물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유두가 함몰되거나 피부가 함몰되기도 한다. 암세포가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퍼지면 겨드랑이 림프절이 커지는 증상도 호소한다. 이들 증상이 있다고 모두 유방암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들 중 한 증상이라도 있으면 전문의를 찾아 진찰받아야 한다.”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은 자랑해야 한다. 병에 덜 걸리려면 섭생을 잘하고 조기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는 시간이 약이다. 스트레스를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