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5세기 세계 과학계 휩쓴 세종의 '창조적 질문'
우리 경제는 지난 50여 년간 급속도로 발전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를 낮추고 높은 품질로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대부분 없던 것을 창조해낸 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모방하고 발전시키는 형태였다. 중국이 무섭게 쫓아 오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선 경쟁자들을 따돌릴 정도의 초격차 전략을 펴거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한국의 평균 지능지수(IQ)는 전 세계 2위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아인슈타인은 물론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창의적 업적을 가진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 인물들이 뛰어놀 마당을 깔아 줄 사람은 과연 없었을까. 시대를 넓혀 보면 한국인이면서도 누구도 그의 창의적 업적에 토를 달지 못하며 모든 한국인이 존경하는 창의적 인물이 딱 한 사람 떠오른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1983년 일본의 이토 준타로 교수가 15세기 초기부터 중기까지 전 세계 국가별 과학적 성과물을 정리한 결과 중국은 4건, 일본은 0건, 조선은 21건, 유럽 등 기타 국가는 19건이었다. 조선은 이 시기 전 세계 과학기술을 이끈 최첨단 국가였다. 마침 세종이 재위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저자인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종에게 창조습관을 묻다》라는 책을 쓰기 위해 세종실록의 숨은 면면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세종에게서 현대의 우리가 배우고 몸에 익힐 만한 ‘창조 습관 다섯 가지’를 뽑아냈다. 세종 시절 농업 생산성이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것은 세종의 창조적 요동, 즉 문제를 발견하고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는 습관에 있었다. 그가 재위한 내내 조선은 가뭄을 겪었지만 가뭄을 원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뭄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천문을 연구하고 가뭄에 대비한 이앙법 등 새 농법을 개량했다.

세종은 또 ‘왜’라는 질문을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사물, 환경, 제도에도 던졌다. 항상 신하 또는 백성들과 대화하며 질문을 던졌고 여기서 현실의 문제와 처방을 찾았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에도 세종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생각을 유도하는 학습법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세종은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습관을 통해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또 다른 습관은 그의 창조적 개방성에 있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습관이었다. 말단 신하들과 독대하고, 많은 신하와 경연을 통해 학습했다. 그렇게 그는 음악의 박연, 언어와 성리학의 신숙주, 역사와 천문 과학의 정인지, 농업의 정초, 과학의 장영실 등으로부터 많은 전공분야를 흡수했다. 이런 세종의 창의적 습관과 사고는 결국 새로운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는 위대한 결과로 이어졌다.

저자는 “생각의 호수가 잔잔하면 창조에 아무런 기여를 못한다”고 말한다. 세종의 머릿속 생각의 호수는 항상 넘실댔고 늘 문제를 직시하며 쉼 없이 원인을 해결하고자 했다. 일상에 익숙해지면 창조습관은 퇴화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창조습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행인 점은 우리도 ‘세종’이라는 대표적인 창조 교과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