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설정 스님 전격 사퇴… 수습 놓고 주류·개혁세력 대립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사진)이 “산중으로 돌아가겠다”며 21일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지 8개월여 만이다. 하지만 현 종헌·종법에 따른 선거를 주장하는 종단 주류 세력과 전국승려대회를 통한 종단 혁신을 주장하는 재야·개혁 세력이 대립하고 있어 단기간에 사태가 수습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설정 스님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견지동 한국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종단에 나왔지만 뜻을 못 이루고 산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며 즉각 사퇴할 뜻을 밝혔다. 이어 조계사 대웅전에 들러 참배한 뒤 곧바로 차를 타고 충남 예산 수덕사로 향했다.

설정 스님은 회견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그런 일이 있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또 “총무원장으로서 1994년 개혁을 통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고 싶었으나 소수 정치 권승들이 종단을 철저하게 붕괴시키고 있다”며 사부대중이 주인이 되는 종단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대각성을 촉구했다.

설정 스님 사퇴는 중앙종회의 불신임 결의안에 대한 인준 여부를 결정할 원로회의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원로회의에서 불신임안이 인준될 가능성이 큰 데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앙종회,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물론 본사인 수덕사 스님들까지 나서 사퇴를 종용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후임 총무원장 선출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중앙종회, 교구본사협의회 등 종단 주류 세력과 종단 혁신을 요구해온 전국선원수좌회, 불교개혁행동 등 개혁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다. 특히 오는 26일 조계사에서 개혁 세력이 열 예정인 전국승려대회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주류 세력이 맞불 집회까지 예고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은 26일 오후 2시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를 열 계획이다. 승려대회는 당초 23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태풍 솔릭이 당일 한반도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돼 연기됐다. 이에 맞서 교구본사주지협의회와 중앙종회, 전국비구니회, 신도단체 등은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조계사에서 ‘참회와 성찰, 종단 안정을 위한 교권수호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불교개혁행동은 이에 대해 “교권수호 결의대회가 승려대회에 대한 맞불 집회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구본사협의회 등은 이날 결의대회에 5000~1만 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고해 승려대회 측과의 물리적 충돌 우려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