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미 씨가 자신의 작품 ‘요트, 세일링’을 설명하고 있다.
최유미 씨가 자신의 작품 ‘요트, 세일링’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일에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저서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에서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하는 놀이, 우리 삶 전체를 행복한 방향으로 한 차원 끌어올려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몰입(flow)’이라고 했다. 몰입은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삼매경’과 비슷하다.

서양화가 최유미 씨는 이런 몰입의 상태를 시각예술로 표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괴로움이나 결핍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평정심’을 색채 미학으로 승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한경갤러리에서 시작한 최씨의 개인전은 30년 이상 고집과 끈기로 일궈낸 몰입의 미학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자리다. ‘삶, 요트, 세일링’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파란색과 노란색 등 원색에 무채색인 흰색을 가미해 현대인의 평정심을 은유한 추상화 20여 점을 내걸었다.

최씨는 오랫동안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몰입’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로 삼아왔다. 현실이라는 장벽에 막혀 쉽게 허락되지 않던 마음의 평정을 물결, 빛, 소리, 속도에 빗대어 화면에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출품작들은 관람객들에게 잠시나마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젊은 시절 우연히 해변에서 맞닥뜨린 요트를 보고 느낀 물결의 일렁임과 빛의 아우라를 화면 깊숙이 끌어들였다. 화면 안에는 요트를 연상케 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다. 대신 바람과 바닷물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듯한 낡은 요트의 표면과 같은 이미지들이 추상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빛, 바람, 속도, 물의 일렁임 등으로 낡고 바래고 퇴색되어지고 더러는 존재가 분명치 않은 부산물들이 엉겨 붙은 요트의 표면은 오랜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해준다”며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 속에서 드높이 돛을 세우고 도도히 항해하는 화려한 요트는 현대인의 꿈과 자유, 행복감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작업 방식 역시 몰입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캔버스에 수천 번 붓질을 한 뒤 천을 얹어 물감을 찍어내고, 그 천을 다시 화면에 덧붙인 식이다. 캔버스 화면 내부에서 표면으로 빠져나와 색면을 관통하는 실이나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선 등을 물 흐르듯 꾸며 복합적인 콜라주 형태의 평면을 만들어낸다. 두텁고 무겁던 붓질이 투명한 물감의 발림처럼 경쾌해진 것은 그의 시선이 그만큼 내면의 행복과 기쁨을 찾았다는 표현일까. 전시는 이달 23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