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느 마을에 빵을 구워 파는 사람이 있었다. 빵 맛이 좋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그 사람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마치 춤을 추는 듯 즐거워 보였다. 한 손님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제와 똑같은 빵은 굽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일본 위스키 탄생지인 야마자키 증류소 내부.
일본 위스키 탄생지인 야마자키 증류소 내부.
이 일화는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만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만드는 물건도 끊임없이 나아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이런 장인정신은 일본 위스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 위스키의 품질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세계 최고의 위스키를 선정하는 시상식에서 일본 위스키는 단골손님이다.

오늘날의 일본 위스키 기틀을 닦은 이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두 사람, 도리이 신지로와 다케쓰루 마사타카다. 이 둘은 일본 위스키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산토리와 닛카의 창업주로, 재밌게도 이 둘의 만남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시작됐다.

와인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도리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위스키를 생산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경험이 없는 데다 스코틀랜드와 사뭇 다른 기후, 그리고 오랜 숙성기간 등의 문제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만류했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사업을 밀고 나갔다. 도리이는 스코틀랜드에서 연수를 마치고 일본에 막 돌아온 젊은 다케쓰루와 교토 인근에 증류소를 세워 위스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둘의 위스키에 대한 생각은 정반대였다. 도리이와 뜻을 달리한 다케쓰루는 결국 독립해 일본 홋카이도에 닛카 위스키를 설립한다. 도리이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다케쓰루는 정통 스코틀랜드 방식 위스키를 추구했다. 그들의 신념은 증류소 위치에도 영향을 미쳐, 도리이는 예부터 차를 끓이는 데 물이 좋기로 유명한 야마자키에,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비슷한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세웠다. 정반대 방향을 지향한 두 업체의 경쟁을 통해 일본 위스키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일본 위스키 성공에는 시장에서의 끊임없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1929년 첫 제품이 나온 이후 일본 위스키가 빛을 보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대대적인 위스키 붐을 맞는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로 주류 문화도 국제화 시대에 맞춰 가려는 소비자의 의도를 업계가 정확히 짚은 것이다. 주점에서 위스키를 병째 주문하고, 다 마시지 못하면 다음 방문 때 다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키핑’ 제도도 이때 널리 퍼졌다.

1970년대 위스키의 인기를 한층 더 높여준 것은 바로 ‘미즈와리’ 문화였다. 미즈와리란 물을 섞는다는 뜻으로 식사와 함께 마시기에는 다소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물로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 반주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소비층을 넓히기 위한 위스키업계의 전략은 적중해 주점에서만 소비되던 위스키를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끝을 모르고 성장하던 일본 위스키도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과 함께 하락세에 접어든다. 20여 년간 침체를 겪은 일본 위스키 시장은 2007년에는 전성기의 4분의 1 규모로 축소됐다. 이런 일본 위스키의 위기를 벗어나게 한 것은 바로 ‘하이볼’ 붐이었다.

하이볼이란 위스키에 탄산수나 다른 음료를 섞어 도수를 낮추고 청량감을 도드라지게 한 칵테일의 일종이다. 하이볼의 인기로 그동안 연산(年産) 위스키 중시에서 개성과 맛을 강조한 연산 미표기 위스키 위주로 일본 위스키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위스키업계는 하이볼로 젊은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오늘날 하이볼은 일본의 주요 식당이나 주점에서 맥주만큼이나 대중적인 술로 인기를 끌게 됐다.

일본 위스키는 2010년대 접어들며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만 치중해 해외에 다소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위스키도 업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이종기의 위스키 기행] 탄산수·음료 등 섞는 '하이볼'… 하락세 겪던 일본 위스키 '구원'
일본 위스키는 업계의 투철한 장인정신과 식습관에 맞춰 나가는 판매전략을 통해 독창적인 위스키 문화를 창출했다. 어느덧 일본 위스키는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양주’가 아니라 일본 술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도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기 < 양조 증류 전문가·세계술문화박물관장 >